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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김치와 와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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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김치와 와쇼쿠

입력
2013.11.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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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특파원 사무실 근처에 유명한 라면 가게가 있어 점심 시간에 자주 들리곤 했다. 일본 총리도 줄을 서서 먹은 적이 있다고 한국에서 발간되는 여행 책자에 소개된 적이 있어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 역시 많이 찾는 곳이다.

기자는 2년이 넘도록 한 달에 서너번 이 가게를 찾았는데 방문할 때마다 라면의 한 종류인 쓰케멘(진한 국물에 면을 찍어 먹는 요리)을 시켰다. 돼지고기 육수를 우려낸 국물 맛이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주문을 하기 전에 종업원이 “오늘도 쓰케멘이죠?”라며 먼저 알아봐주기도 했다.

그런데 5, 6개월 전부터 음식 맛이 확 달라졌다. 예전에 느꼈던 진한 국물 맛이 사라진 것이다. 종업원이 “음식의 맛을 리뉴얼한 것”이라는 해명했지만 원가를 낮추기 위해 국물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돼지고기 양을 줄인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고 그날 이후 가게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일본의 음식점들이 은근슬쩍 메뉴의 질을 낮추는 이유는 장기 불황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팍팍해진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 가격을 인상하기 보다 음식의 질을 조금 낮추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일본 음식점들이 수년간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사정이 숨어있다.

오사카, 교토, 효고 등 간사이 지역에서 호텔 체인을 운영하는 한큐한신호텔그룹이 메뉴에 적힌 내용과 다른 요리를 수년간 제공한 것이 최근 들통나 회사 대표가 옷을 벗는 사건이 있었다. 메뉴에 신선한 생선이라고 표시하고도 실제로는 냉동 생선을 사용했고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생산지를 속였으며 일반 채소를 유기농 채소라고 내놓기도 했다.

회사 대표는 당초 “종업원의 인식 부족에 따른 단순한 표시 잘못”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허위 기재된 메뉴 47가지 모두가 원래 메뉴보다 원가가 저렴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호텔 체인 내 23개 음식점에서 메뉴와 다른 음식을 먹은 고객이 7만8,00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대국민 사기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회사 대표는 “사기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각 지역 호텔에서 메뉴를 허위 기재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 가격 인상이라는 위험 부담보다는 저렴한 재료로 원가를 낮춘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슐랭 가이드 평가에서 도쿄는 평점이 가장 높은 별 세개 짜리 레스토랑을 14개나 보유한 도시로 기록돼 프랑스 파리를 누르고 별 세개 식당 최다 도시에 등극했다. 이들 음식점은 서민들이 쉽게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음식점은 물론 중산층을 겨냥한 식당조차 가격 대신 음식의 질을 낮추고 있어 일본 식문화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내달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정부간 위원회에서 일본의 식문화를 의미하는 와쇼쿠(和食ㆍ화식)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록된다. 이런 시점에서 터진 유명 호텔의 메뉴 허위 기재 사건은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 사이의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사건은 한국에게도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가령 김치만 해도 값싼 중국산의 수입이 늘다 보니 정작 한국산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김장 담그기가 퍼포먼스에서나 볼 수 있는 죽은 문화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온다. 내달 유네스코 위원회에서 와쇼쿠와 함께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록될 김치와 김장 문화를 제대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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