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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학상을 기다린다] <3·끝> 수상을 디자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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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학상을 기다린다] <3·끝> 수상을 디자인하자

입력
2013.11.0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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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논문 인용 빈도 높고 권위적인 과학상 수상 등이 노벨상 접근의 긍정 신호독자적 연구서 수상까지 평균 25년 이상 걸리는 추세… 차세대 리더 발굴이 중요창의성에 중점 둔 지원 확대… 국내 과학계 변화 시의적절

'힉스' 입자를 처음 예측한 물리학자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거라는 미국 학술정보기업 톰슨로이터의 예측은 명쾌하게 들어맞았다. 톰슨로이터는 1989년부터 34명의 수상자를 알아맞혔다. 발표 전까지 철저히 비밀인 수상자 예측이 가능한 이유는 대부분 수상 전 몇 가지 공통적인 '징후'를 보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이 같은 징후를 갖고 있는 과학자가 아직 거의 없다. 가까운 시일 안에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예상이 나오는 근거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상 패턴을 분석해보면 미래 노벨상 배출, 우리도 못할 것 없다. 다행히 최근 우리 과학계가 지향하려는 방향도 수상자들이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벨상 예견되는 3가지 징후

톰슨로이터가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주요 근거는 자사의 대규모 국제학술지 데이터베이스에서 산출된 인용 횟수다. 우수한 학술지에 낸 논문의 인용 횟수가 많을수록 학계에 미친 영향력이 큰 만큼 수상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노벨상을 받은 논문은 대부분 수상 전 약 20년 동안 다른 논문에 인용된 빈도가 상위 0.1% 안에 들었다.

또 많은 수상자들은 노벨상을 타기 전 이미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다른 상들을 받는다. 이스라일 울프재단이 수여하는 울프상과 미국 래스커재단이 주는 래스커의학연구상이 대표적이다. 울프상 수상자 중 약 30%가, 래스커상 수상자의 약 50%가 노벨상을 받았다. 각 상을 받은 뒤 노벨상 수상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5년 안팎이다.

노벨재단이 주최하는 노벨 심포지엄도 노벨위원회가 주목하는 연구 분야와 연구자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해마다 특정 주제를 정해 그 분야의 과학자 20~40명을 초청해 진행하는데, 이들 중 수상자가 흔히 나왔다.

한국연구재단이 내놓은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톰슨로이터의 예측과 울프상ㆍ래스커상 수상, 노벨 심포지엄 초청 등 세 가지 징후로 파악한 2000~2011년 노벨상 예측 정확도는 거의 90%에 이른다. "이 시기 화학상은 12번 모두, 물리학상과 생리의학상은 각각 9번이 3가지 징후 중 적어도 하나를 거쳤다"는 것이다. 이들 징후에 해당하는 한국인 과학자는 2010년 그래핀을 주제로 열린 노벨 심포지엄에 참가한 미국 컬럼비아대 김필립 교수를 포함한 2명뿐이다.

수상 시나리오 재구성

기초과학 연구는 아이디어가 완성된 뒤 학계에 알려져 우수성을 인정받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이 기간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가 연구의 운명을 가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노벨상을 안겨준 연구가 나온 시점과 수상 시점 사이의 간격이 1901~1972년엔 평균 12.3년이었지만, 1901~2000년엔 15.1년으로 늘었다. 1990년대만 치면 평균 25년이다. 수상 연구 배출부터 수상까지 점점 더 오래 걸리고 수상 나이도 늦어지는 추세다.

이 같은 통계들을 근거로 한국연구재단 정책연구팀은 노벨상 수상 경로를 재구성해봤다. "30세 전 박사학위를 받아 독자적 연구를 시작하고 40세 전후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낸 뒤 학계의 주목을 받다 50~55세에 노벨상 '징후'를 얻으며 그 분야 최고 권위자가 돼 55~60세에 수상한다"는 시나리오다. 예외도 있지만 대다수가 이런 패턴을 밟았다.

주목할 만한 건 30~40대에 이미 독자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창의적인 신진 연구자 양성이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젊은 시절에 나온 노벨상 업적 대부분은 이미 중요성을 인정받은 분야에서 나온 '추격형'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선도형'이다. 논문을 몇 편 발표했느냐 같은 '양'을 기준으로 평가했다면 당시 이들은 낙제점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과감한 인재 발굴과 새로운 평가 방식이 노벨상 배출의 기반이라는 얘기다.

과학계는 이미 성장통 중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달 "내년부터 연구개발 평가를 '질'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테면 논문을 얼마나 우수한 학술지에 냈는지, 실제로 연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까지 따져 가중치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논문 편수만 많아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신진 연구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던 기존 방식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연구비 지원 경향도 서서히, 그러나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40세 미만이나 박사학위 취득 후 7년 이내인 젊은 과학자를 지원(신진연구지원사업)하는 예산은 2011년 789억7,000만원에서 올해 910억원으로 늘었다. 남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도전적 연구(모험연구지원사업) 예산은 2011년 73억원에서 올해 151억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2011년 출범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아예 관행을 깨는 선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10년 간 연 30억~120억의 대규모 연구비를 책임지는 연구단장을 기존 업적보다는 연구 계획의 창의성과 우수성을 중심으로 뽑는다는 게 기본 철학이다. 이렇게 뽑힌 단장은 연구에 중추적 역할을 할 신진 인재를 직접 선발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최근 잇따른 이런 변화에 대해 대다수 연구자들은 큰 틀에서 바람직하다는데 이견이 없다. 노벨상 수상을 기약하는 '국가 차원의 기획'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변화를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새 연구 지원 방식이 생긴 뒤 기존 사업의 경쟁률이 치솟는다거나 파격적 지원을 받는 과학자 선정 과정이 더 투명해야 한다는 등의 지적은 과학계가 함께 해결해야 부분이다.

장기적으로 국가 연구비 의존도를 낮춰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정부 연구비는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관리의 보수성은 필연적"이라며 "기업을 비롯한 민간재단의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보상책을 정부가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민간기업 소속으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1930년대 2명, 1940년대 1명, 1980년대 6명, 2000년대 5명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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