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나들이객으로 북적이던 경기 고양시 서오릉 장희빈 묘 앞. 20대 여성이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너울너울 '학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당인 것 같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행을 벌인 이는 1인 잡지 의 발행인 이진송(25ㆍ이화여대 국문과 대학원)씨다. 이유인즉 '장희빈 묘에 음식을 바치고 학춤을 추면 애인이 생긴다'는 속설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단다.
그래서 애인이 생겼을까. 봄호 '속설 X-file' 코너에 실린 결론은 이렇다. "애인은커녕 애인 될 만한 인간의 머리터럭도 안 보인다."
계간지 는 연애하지 않는 사람을 문제 있는 '미완의 존재'로 보는 연애지상주의를 깨는 잡지다. 연애를 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풍요로운지를 설파한 칼럼, 사랑과 소유욕의 역설적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함께 자취 요령, 혼자 하는 여행 등 '모태 홀로'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60쪽 내외의 분량에 담는다.
지난해 말 창간호를 낸 뒤 계절마다 500부씩 찍는데,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을 통해 일부를 후원 받고 나머지는 이씨 사비로 충당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씨는 "'스물네 살까지 연애를 하지 않으면 여자는 학이 된다'고 놀리는 친구들 말에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나 잘 사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잡지를 낸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보는 자유연애는 1910년대 개화기, 서양에서 수입된 인위적 문화에 불과하다. 당시로선 혁신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자신의 '몸값'을 높여 그럴 듯한 연애에 성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연애가 사람을 억압하기 쉽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사랑 자체를 부정하거나 모두 솔로가 되자는 건 아니다. 이씨는 "연애와 비연애를 우열 관계로 볼 게 아니라 삶의 한 형태로 평등하게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는 '개그콘서트'에 나와 한때 유행하던 "커플지옥, 솔로천국" 같은 자조적, 공격적 문구와도 결을 달리 한다.
연애하지 않는 사람이 늘면 가뜩이나 낮은 출산율이 더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묻자 이씨는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에서는 비혼(미혼), 비연애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며 "솔로도 마음 놓고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된다"고 답했다.
의 독자가 아직 많지는 않지만 반응은 좋다. 이씨는 "독자들이 잡지를 들고 인증샷을 찍어 인터넷에 올릴 때, 투고하고 싶다는 연락이 올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씨가 연애를 하게 되면 잡지는 폐간될까. 그는 "솔로인 친구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워서라도 계속 내겠다"며 웃었다. 올해 성탄절에 맞춰 나오는 겨울호는 서교동 인디서점 '유어 마인드', 동교동 문지문화원 등에서 무료로 배포된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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