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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독재 몰아내며 내뿜었던 환호, 기약없는 신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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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독재 몰아내며 내뿜었던 환호, 기약없는 신음의 시작이었다

입력
2013.11.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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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간의 핏빛 갈등과,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폭탄테러 등으로 이집트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유엔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는 이런 폭력의 순환과 불안정이 한 나라의 정신 건강에 씻을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유엔은 이집트인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우울하고 침체돼 있으며, 전반적인 행복 지수에서도 조사 대상국 156개국 가운데 138위에 그쳤다고 밝혔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최근 '혁명 트라우마-이집트의 정신건강'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집트가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를 겪은 2011년 이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는 시민혁명 이후 치안이 크게 나빠졌고 소수 기독교인을 겨냥한 무차별 테러도 수시로 발생하는데다 시위 참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카이로 교회 결혼식장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괴한들이 총기를 난사해 8살 어린이를 포함해 4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져 기독교인들의 공포는 절정에 달하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카이로 라바 알아디야 광장에서 벌어진 군경의 이슬람주의자 시위대 유혈 진압과정을 기록한 사진 속, 피 묻은 사체더미 주변에 있던 어린이와 청년들이 공포에 가득 질려 있는 모습처럼 이집트 전체가 혁명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집트 정신과 전문의들은 지속적인 불안정 상태가 특히 아동과 젊은이들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동정신과 의사인 수아드 무사 카이로대 교수는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지난 3년간 상담하러 온 손님들이 더 늘었다"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6~14세로 자신이 납치를 당하거나 강도나 도둑으로부터 피해를 보게 될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막연한 불안감이 아동의 정서발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며 트라우마의 부정적인 영향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정신과 의사 샐리 토마는 이집트 혁명과정에서 정신적 외상을 겪은 2명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카이로에서 시위를 벌이다 군과 경찰에 구속된 한 남성은 구금 기간 심한 성적 학대를 받은 뒤 정신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망상에 사로잡혀 헛소리를 끝없이 해대고 환각 증상이 심해져 정신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다른 젊은 여성 환자의 경우,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청년 무리에 붙잡힌 뒤 차량 지붕 위에 벌거벗긴 채 묶여 15분간 도심 주변을 끌려 다닌 충격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지만 병세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카이로아메리칸대학(AUC)을 졸업한 모나 엘쉬미는 "지난 2011년 보안군의 바리케이트를 넘어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몰아냈을 때의 행복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 이후 비관주의가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고 이집트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집트의 한 정신과 의사는 혁명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이에 한참 못 미치는 현재의 괴리감이 가져온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이집트 국민 전반에 퍼져 있는 불안감과 실망감은 통계로도 확인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집트인 80%가 무바라크 축출 이전보다 현재 국가 상황이 더 좋지 않다고 응답했다.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전체 국민 중 3분의 2 이상이 2011년 이집트 혁명 이전보다 지금이 일자리 기회가 더 사라졌다고 답했다.

종교 갈등도 국가 전체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지적했다. 종교가 다른 남편과 아내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거나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아예 이혼하는 사례가 최근 몇 년 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인권운동가 마하 마먼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종교가 다른 가족 간의 오랜 긴장이 국가 혼란을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종교폭력의 사회심리적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최근 이집트 남부 미니아지역을 방문한 그는 "(종교가 다른) 부부는 서로를 마치 다른 생물체로, 사람이 아닌 것으로, 그것도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바라크가 축출된 이후 지난 3년간 나라가 완전히 뒤바뀌는 과정에서 이집트의 젊은 청년들과 커플들의 입에는 현재 쓴 맛만이 남아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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