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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들림 현상으로 나타난 인간사회의 심각한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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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들림 현상으로 나타난 인간사회의 심각한 균열

입력
2013.11.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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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루?瓦?역병이 돌아 몇 달 만에 주민의 4분의 1 가량인 3,700여명이 몰살당했다. 마을 안 우르술라회 수녀원에 있던 수녀들도 집단으로 악령에 사로잡힌 증상을 보였다. 영성신학자인 쉬랭 신부는 퇴마사로 파견돼 원장수녀 잔 데 장주를 괴롭히던 악령을 굴복시켰지만 정작 자신이 악마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하고 은둔에 들어갔다.

프랑스 역사가이자 예수회 사제이며 사상가인 미셸 드 세르토(1925~1986)는 헉슬리의 소설 로도 잘 알려진 이 사건에서 당대 시대변화의 중요한 증후인 '타자성'의 출현을 읽어낸다. 세르토는 희귀한 문서와 책자를 면밀히 조사해 르포르타주처럼 사건을 재구성해 들려주지만, 정작 사건 진위에는 관심이 없다. '누가, 누구에게 마귀들렸는지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마귀들림에는 진실한 역사적 설명이 없다.'(383쪽)

그는 마귀들림 현상을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난 심각한 균열의 발현으로 봤다. 그러한 균열은 마귀라는 타자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수녀들의 공적 자아에 맞서 내부의 타자가 발현하는 과정이 마귀들림 현상이란 것이다.

이 책은 루??사건에 대한 연대기적 서술 형태를 띠면서도 심층적인 인물 분석과 예리한 당대 권력관계 해부, 언어와 담론 분석 등을 다층적으로 엮여낸다. 역사학의 본질을 타자에 대한 탐구에서 찾았던 역사관과 근대 초기 신비주의 현상에 대한 풍부한 문헌학적 연구를 접목한 세르토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가 쓴 책 중에선 국내 첫 번역서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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