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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1월 1일] 탐욕이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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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1월 1일] 탐욕이 문제라고?

입력
2013.10.3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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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국내 재계순위 5위도 했던 동양그룹이 다섯 개 계열사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일명 '동양 사태'가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처음에는 거대 기업의 파산 위기가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보다 더 강력하고 심각한 문제가 터져 나왔고 그 실체가 드러났다. 동양그룹이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자금난 해결을 위해 2009년부터 2013년 사태 직전까지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총 19조1,400억 원어치 발행했고, 그 대부분을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투자자에게 팔아 치웠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금융지식이 높지 않은 이들을 타깃으로 '불완전판매' 정황이 짙은 방식을 써서 말이다. 그 동안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금융감독원이 관리 감독 및 제재 조치를 통해 얼마든지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손을 놓고 있었다는 보도에 사람들은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동양증권 직원은 그룹 회장에게 고객들의 돈을 꼭 상환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 국정감사장에 나온 금융감독원장은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언론보도를 넘어 국정감사 현장에서 속속 자료로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에는 개인투자자의 탐욕을 질책하는 글들도 간간히 올라온다. 고수익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그런 사단이 났다는 것이며, 투자가 아니라 투기 심리로 그리 됐으니 스스로 책임지고 고통을 감내하라는 식이다.

사실 인터넷 댓글이 아니더라도 법원에서 동양그룹의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한 지금 약 4만5,000명 투자자들은 옴짝달싹 못하고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생겼다.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다섯 계열사의 부실 규모가 심대해 파산절차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수익은커녕 투자 원금의 회수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그렇다. 실체야 재벌 오너 일가의 부실하고 부도덕한 기업 경영에 관계 당국의 방임이 보태져 초래된 파국이라 할지라도 법률적으로는 투자자 개인들이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그 투자자들 각자가 '사기성 금융상품 판매'나 '불완전판매' 등 동양의 범법 행위를 법이 인정하는 틀 내에서 증명해내지 못하는 한 말이다.

그러나 동양그룹의 기업어음 및 회사채를 산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 탐욕에 눈이 멀어 크나큰 위험에도 자발적으로 뛰어든 것일까?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투자자 스스로 각개 전투하듯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 상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일까?

동양 사태는 단순히 한 재벌 그룹의 경영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금융업체를 거느린 대기업이 자사가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수만 명 개인들의 재산을 투자 명목으로 끌어 썼다가 덜컥 사법당국에 법정관리를 맡기고 손을 턴 사건이다. 그 과정이 합법적이었냐 불법적이었냐는 앞으로 사법부가 엄격히 다툴 일이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문제적 구조 및 의심스러운 과정을 개인 투자자들이 증명해야 하고, 심지어 익명의 여론으로부터 도덕성까지 비난 받는 상황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말했듯 동양그룹과 동양증권이 쳐놓은 덫이 원래 문제의 핵심 원인이며, 이미 국감 등을 통해 밝혀졌듯이 투자자들의 상당수가 투기나 투자가 아니라 예금과 같은 금융상품을 원한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실체가 이런데도 탐욕을 들먹이며 개인 투자자를 탓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매한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초래해놓고도 신용불량자들의 무리한 대출과 대중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며 빠져나간 전 세계 금융산업 마피아들의 궤변을 복창하며 놀아나는 꼴이다. 지난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조사됐지만, 이번 동양 사태에서 개인 투자자 4명 중 1명이 60~70대 고령층이며 그들 대부분이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부실기업의 채권과 어음을 사고 종국에는 파산이라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바는 거대자본주의 경제 및 금융 시스템을 악용해 우리의 부모, 친척, 지인일 수 있는 개인을 곤궁에 밀어 넣는 무리야말로 탐욕을 비난 받고 단죄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강수미 미술평론가 ㆍ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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