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CEO를 뽑는 일반회사와 달리, '직선제 사장'을 뽑는 이색기업이 있다. 이 회사 창업주는 '80% 지지를 받지 못하면 CEO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언했는데, 커트라인에 1%포인트 못 미치는 지지율이 나오자 약속대로 물러났다. 그 결과 20대의 팀장이 일약 대표이사직을 맡게됐다.
이 모든 이야기는 여행업계 4위인 '여행박사'에서 일어난 실제상황이다.
여행박사는 31일 창업주인 신창연(50) 대표가 물러나고, 주성진(29) 일본팀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신임 주 대표는 2002년 19살의 나이로 여행박사에 입사한 고졸출신의 직원이다. 고등학생 때 여행박사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댓글을 활발하게 달아았는데, 그의 이런 적극적 행동이 신 대표의 눈에 띄어 입사했다. 2010년에는 놀라운 실적으로 직원 가운데 유일하게 1억원의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다.
사실 여행박사는 2005년부터 팀장, 본부장, 이사, 대표이사 등을 직원투표로 선출해왔다. 직원들은 사원-대리-과장-팀장-본부장 등으로 이어지는 직급에서, 자신의 현 직급보다 2단계 뛰어넘은 직급에 도전할 수 있다. 일정 비율 이상의 찬성표만 얻으면 대리는 팀장이, 과장은 본부장이 될 수 있다.
이런 승진제도를 도입한 건 바로 신 대표. 그는 "단지 핏줄이 같다는 이유로 자식을 사장에 앉히고 임의대로 간부를 뽑는 회사에 비하면 이 방식은 아주 훌륭한 것"이라고 자평해왔다. 또 "10년이고 20년이고 죽어라 일해도 기득권층이 움직이지 않으면 평직원으로 끝나는 게 일반 샐러리맨들의 현실이다.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도 했다.
29세의 젊은 사장이 탄생하는 과정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80%의 직원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겠다'고 해온 신 대표는 투표 결과 0.8%포인트 모자란 79.2%의 지지를 받았다. 신 대표는 약속대로 사임했지만, 당황한 직원 누구도 선뜻 CEO를 맡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결국 팀장급 40여명이 모인 긴급회의를 가졌고, 이들의 투표를 통해 주성진 팀장이 대표이사로 선출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신 대표는 1년 간 대표이사 권한대행으로 깎인 연봉을 받으며 신사업 등의 업무에 몰입 계획"이라며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고 지금도 내부적으로 말이 많은 상황이지만 변화와 혁신을 위한 새로운 시도로 봐 달라"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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