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악장이 끝나고 지휘봉을 쳐들었던 지휘자의 팔이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연주회장을 빠져 나갈 채비를 서두르는 관객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율리아 피셔 & 드레스덴 필하모닉' 연주회를 찾은 관객들에게는 로비에서 진행될 공연 1부의 바이올린 협연자 율리아 피셔의 사인회가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앙코르 연주 감상도 과감히 포기할 만큼 소중했던 까닭이다. 자신감과 에너지 넘치는 활놀림으로 신파조의 감각적 묘사와는 거리가 먼, 기교와 과장을 배제한 담백한 연주를 들려 준 피셔는 이렇게 첫 방한에서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어려운 기교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즐긴다"던 그는 본 연주인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에 이은 첫 번째 앙코르곡 힌데미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로 기교의 정점을 보여 주며 객석에 행복한 충격을 안겼다. 음악 칼럼니스트 정만섭씨는 공연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완전 쇼크 먹었음"이라고 적었다. 그는 "직선성이 강하면서도 디테일도 잘 살린 연주여서 미셸 오클레르(1930~1988) 이후로는 그보다 뛰어난 수준의 브람스 협주곡 연주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관악 파트가 돋보인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연주도 기품이 있었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1870년에 창단된 오케스트라의 전통이 묻어났다. 연주자가 하나 둘씩 쭈뼛쭈뼛 무대에 자리를 잡고 각자 악기를 점검하는 대부분 연주회의 시작과 달리 모든 연주자가 입장하고 악장이 객석을 향해 목례한 후 비로소 동시에 착석하는 무대 매너가 인상적이었다.
메인 프로그램인 2부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느린 템포로 시작해 초반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지만 목관을 중심으로 깊고 풍부한 소리를 내며 이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악 파트와 관악 파트의 중량감이 균형을 이뤄 마치 각 파트가 대화를 주고 받는 듯했던 2악장의 여운이 특히 길게 남았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영진씨는 "독특한 박자에 집중한 상임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46)의 대담한 해석이 인상적"이라며 "2, 3악장에서는 몽환적인 발레가 펼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08년 내한 때보다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소리가 더 정돈된 느낌이어서 잔데를링이 지휘자로서 전성기를 맞을 10~20년 후의 무대가 더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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