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의 먹구름이 걷힐 기미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잦은 손짓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좀처럼 정상회담에 응할 뜻을 보이지 않는다. 군대위안부에서 독도 문제에 이르는 '역사문제'에 대한 분명한 사죄와 반성이 사실상의 전제조건으로 설정돼 있다. 양국의 불편한 정치관계는 경제ㆍ민간 교류에까지 영향을 미쳐 양 국민의 상대 인식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 활발한 민간교류가 정치관계 악화를 제약했던 과거와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 일본의 역사인식 후퇴와 표리인 보수우경화에 대한 한국민의 반감은 날로 뚜렷하다. 대일 인식의 악화는 여론조사에서 잇따라 확인되고 있고, 이미 과민반응에 가까운 반감으로 치닫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욱일기(旭日旗)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이다. 우선은 일제 침략과 식민지 통치라는 역사 경험이 한국민의 무의식에 남긴 상처를 일깨운다. 다만 내적 노력이 없어서는 어떤 외적 위안도 트라우마를 씻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과민반응은 멀리 하는 게 낫다.
▲ 메이지 유신으로 탄생한 일본제국이 1870년 육군기로 지정한 것이 욱일기다. 국기인 '히노마루'의 둥근 해에 사방으로 뻗는 햇살을 덧붙였다. 1889년에 탄생한 제국 해군기는 중앙의 해를 왼쪽으로 살짝 옮겼고, 오른쪽 햇살이 굵어졌다. 모양은 약간 달라도 '떠오르는 해', 즉 아침 해를 형상화한 것은 같아서 똑같이 욱일기로 불렸다. 패전 후 사라졌다가 1952년 해상자위대가 구 해군기를 그대로 계승했고, 육상 자위대도 옛 육군기의 16줄기 햇살을 8줄기로 줄인 욱일기를 쓴다.
▲ 아침햇발(욱일) 문양 모두가 욱일기에서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아사히(朝日) 신문이나 아사히 맥주는 그 이름대로 회사기나 상표에 욱일 문양을 쓰고, 티벳과 마케도니아 국기, 구 소련과 러시아 공군기, 통일교 휘장도 비슷한 문양이다. 일본 응원단의 욱일기에서 과거지향을 읽어낼 수야 있지만, 골프 백 문양에서까지 욱일기를 찾아내는 눈길은 지나치다. 자라 보고 놀랐다고 냄비 뚜껑에도 놀란다면 이미 과민반응을 넘은 과민증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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