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에 처한 한진해운이 내년 9월까지 갚아야 할 부채는 약 6,000억원이다. 30일 대한항공이 1,500억원을 긴급 지원키로 해 급한 불은 껐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금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관건은 바로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 성공 여부다.
3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4억달러(약 4,2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을 추진 중이며 이르면 11월 초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성공할 경우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835%(6월말 기준)에서 620%로 떨어지고 유동성 위기도 상당 부분 해소된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채권은행들과 금융당국 모두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어서다. 기업이 채권 발행으로 빚을 갚아나겠다는데 은행들이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구채 그 자체의 문제 때문이다.
영구채는 주식처럼 만기가 없으면서 채권처럼 매년 일정한 이자를 지급하는 장기 금융상품이다. 회계상으로는 원래 부채이지만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국제회계기준(IFRS)으로는 자본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회계감독원은 1일 영구채를 '자본'으로 봐야 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기업 입장에선 기존 주주 지분율을 낮추지 않고도 자본을 늘리고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언뜻 보면 투자자에게도 유리해 보인다. 영구채는 부도가 나면 채권보다 후순위인 대신 일반 회사채보다 높은 발행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만큼 대가가 따른다. 기업이 부도가 날 경우 원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다. 저축은행 동양사태를 부른 후순위채와 기업어음(CP)처럼 대형 금융사고를 촉발하는 뇌관으로 돌변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인 것이다.
특히 업황이 좋지 않은 회사의 영구채 발행이 문제다. 재무구조가 열악한 기업이 영구채를 남발할 경우 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이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은 경우 사실상 자체발행이 불가능하도록 시중은행들의 신용공여(지급보증)를 의무화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영구채 발행이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영구채 발행을 위해 산업은행에 지급보증을 요청했으나 산업은행은 최소 두 개 은행이 더 참여하면 50%인 2억 달러까지 보증을 설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지급보증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재계와 금융당국, 금융업계는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재계에선 금융당국이 즉각 나서서 한진해운의 영구채 발행 도와야 한다고 본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운업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에 큰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경기 불황으로 기업 지원에 소극적인 금융회사들을 끌어드릴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당장 지급 보증을 해야 하는 은행들은 금액이 너무 크다고 주저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관계자는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은행이 지원한다면 우리도 지원할 수 있지만 1억 달러를 지급 보증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양측의 입장을 조율을 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작년에 두산인프라코어가 영구채를 발행했을 때는 5년 후에 두산이 상환을 못할 경우 책임지고 갚아주겠다는 등의 조항이 있었다"며 "지급보증이 이뤄지도록 은행과 한진해운 측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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