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3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62)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판에서 검찰이 낸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받아들이자 검찰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각 결정이 내려진다면 최근 검찰의 내분 사태와 특별수사팀의 분위기가 악화하고 자칫 여권의 정치 공세에 휘말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수사팀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법원이 소방수 역할을 해 주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수뇌부가 아니라 법원이 수사팀을 돕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검찰 공소유지에 힘 실려
검찰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넉 달 동안 원 전 원장의 지시로 트위터에서 5만5,689회에 걸쳐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글을 올리거나 리트윗(재전송)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 18일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했다. 트위터 글은 앞서 검찰이 밝혀냈던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규모를 양적으로 압도해 원 전 원장을 압박할 유력한 카드로 부각됐다. 더구나 수사팀을 독려해야 할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수사 초기부터 선거법 위반 적용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날 법원의 공소장 변경 결정으로 수사팀은 큰 원군을 얻은 셈이다.
법원은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의 '항명' 논란을 촉발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 및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해줬다. 윤 전 팀장은 지난 16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결로 트위터 활동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한 영장을 청구했다. 윤 전 팀장이 검찰 내부 절차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상황에서 영장마저 기각됐다면 더 궁지에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윤 전 팀장도 고비마다 도우미 역할을 해준 법원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1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검사 생활하면서 영장이 거의 기각 안되고 100% 발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밝혔다.
지난달 법원의 재정신청 수용 결정도 결과적으로 수사팀에 힘을 실어줬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23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지휘라인이었던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도 기소하라고 명령했다. 검찰이 지난 6월 원 전 원장만 기소하고 두 사람을 기소유예 처분한 결정에 대해 민주당이 불복해 제기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법원이 원 전 원장 등에 대해 유죄 심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여권에서는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에 대해 과잉수사를 한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법원 결정만 보면 오히려 소극적 수사를 했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판 커진 국정원 사건 공판
원 전 원장 등 국정원 간부들의 향후 공판은 범죄사실과 피고인 모두 늘어난 상태에서 진행된다. 지난 6월 검찰이 원 전 원장만 법정에 세우고 공소사실도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활동에 한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양적으로 판이 커진 셈이다. 실제로 내달 4일 열리는 원 전 원장 공판부터는 이 전 차장과 민 전 단장 사건도 병합되면서 피고인이 3명으로 늘어난다. 공판의 쟁점도 국정원 직원들의 인터넷 댓글 활동뿐 아니라 트위터 활동까지 원 전 원장이 지시했는지 여부로 확대된다.
원 전 원장 측은 그동안 검찰이 지목한 트위터 계정 사용자가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적극 반박해왔다. 재판부도 이날 공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은 트위터 사용자가 국정원 직원인지에 관해 상당히 다투고 있다"고 언급해 향후 트위터 사용자의 신원을 밝히는 문제가 중요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특히 그동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다가 법원 결정으로 피고인석에 앉게 된 이 전 차장과 민 전 단장이 기존 진술을 바꿀 것인 지에도 관심이 쏠려 있다.
법원은 피고인과 범죄사실이 늘어나면서 재판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우려한 듯 주 1회 진행되던 공판을 2회로 늘리는 등 신속한 재판을 약속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