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에 힘이 빠지면 적어도 향후 2년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힘들고 그렇게 3년이 지나면 그 때부터 레임덕이다? 국민에게는 불행한 이러한 공식이 과거부터 어김없이 반복돼 왔다. 지난 10년만 돌이켜 봐도 진보, 보수 어느 정권 가릴 것 없이 집권 초기 최소 40%에서 많게는 60%에 이르던 지지율이 단 1년 만에 약속이나 한 듯 20% 대로 급락했다. 지지율 급락과 함께 정치권발 사과와 사퇴의 반복적 구호는 정권 1년차에 가장 빈번히 등장했던 어휘였다. 참여정부 1년차였던 2003년은 대통령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비리 쟁점, 그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요구로 정치권이 요동쳤다. 결국 갓 1년을 넘긴 2004년 3월 야당에 의해 가결된 대통령 탄핵은 국력낭비와 국정공백만을 초래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3개월만인 2008년 5월 대통령이 국민에게 세 번이나 머리를 숙였지만 미국산 수입 쇠고기로 촉발된 촛불 집회는 사실상 1년차 정부의 국정공황 상태를 초래하고 대통령 퇴진 요구로까지 확대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1년차도 국정원 댓글사건 정국 속에 60%를 상회하던 지지율이 급격히 하향세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인터넷 여론을 들여다보면 공공연히 농을 섞은 비아냥거림 소재로 대통령 사퇴라는 어휘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정부가 매번 직면해야 할 1년차 징크스라 해도 무리가 없는 듯 하다.
어느 정부든 1년차를 기점으로 민생을 챙기는 다양한 정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야 하는데 매번 지독한 정치선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권의 모습만이 목격돼 왔다. 정권이 출범하면 여러 정치세력들은 민주주의, 헌법과 자유,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한다는 거대한 명분으로 정부와 대통령을 평가해 왔다. 그런데 그 평가 논리의 중심에는 역설적이게도 극명한 편 가르기만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정치선전기법이 이상적 가치를 내세워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현실에 불만족하고 이상만 좇을 때 대중의 조급함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 1년이 대한민국의 국운을 좌우할 듯 국민을 압박해 왔는지 모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라의 위기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지금도 국정원 댓글사건 정국에서 여야가 주고받은 대선불복과 헌법불복이란 분명한 선전 어휘는 우리 정치의 극단을 보여 준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끄 엘륄은 선전이 대화를 없애고 대화가 사라지는 순간 상대는 적이 된다고 했다. 고집스런 자기 확신과 타인 비판의 반복이 보여주듯 한 사회에 편 가르기가 횡행한다는 것은 그 만큼 선전이 넘쳐난다는 지적이다. 진실을 검증하는데 절대적 시간을 요하는 난해한 의제를 두고 단기간에 정답의 모양을 갖춘 주장을 쏟아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선전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1년차 징크스는 정부, 정치권, 그리고 국민 모두가 이러한 정치선전의 부작용을 인식할 때 깰 수 있다. 정권은 언제나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원칙과 정치적 명분을 따지기 이전에 좀 더 적극적인 대화의 자세를 지향해야 한다. 침묵과 무대응이 상대에게는 여론 잠재우기식 선전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는 더 강력한 정치선전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대화와 정책 실천이라는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기능해야 한다. 지난 일요일 야당의 헌법불복 규탄과 민주주의 수호 결의대회와 월요일 정부의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를 보면서 또 한번의 1년차 정권 징크스에 대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조금 늦었지만 정부는 담화에 담긴 몇 가지 약속에 대해 여론이 기대하는 평균 수준 이상의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 야당은 경제 관련 법안 및 예산안에 대한 협력은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양측 모두 정치선전을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은 부화뇌동 없는 기다림의 엄중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말에 미치지 못하는 실천이라면 그 때 한 정권을 비판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말이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