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근무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당연합니다. 꽉 막힌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느 순간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듭니다. 그럴 때면 가족들 사진을 본다거나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저장해 둔 파란 하늘 화면을 보면서 승무시간이 끝나길 기다리곤 합니다."(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A기관사)
"매일 하는 지하철 운행인데도 근무하기 20분 전부터는 호흡이 가빠지고, 신경이 곤두섭니다. 보통 하루 두번 승무(운행)하지만, 세번 승무할때도 있는데 이럴 땐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커집니다."(B 기관사)
지난 18일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운영) 소속 한 기관사가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는 모두 3명, 2003년 이후로 자살한 기관사만 5명에 이른다.
어둠 속에서 혼자 하루 4시간 이상의 승무를 해야 하는 지하철 기관사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2인 승무', '근무평가 기준 개선', '지하철 투신 사고 발생시 정신상담 의무화'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개선책은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시의회 별관 회의실에서 이정훈 서울시의원실, 공공운수노조연맹의 주최로 열린 '연이은 기관사 자살사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참석한 기관사들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관계 기관은 사과하고 대책 마련을 떠들지만 그 때 뿐"이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기관사들은 혼자 지하철을 운행하도록 한 '1인 승무제'와 잦은 승무 빈도를 자살까지 이르게 한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현재 서울메트로(1~4호선)가 2인 승무제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서울도시철도공사는 1인 승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2인 승무제를 도입하면 2배의 인건비가 들어 현재 예산으론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서울도시철도공사측의 입장. 그러나 혼자 지하철을 운행하며 문 개폐 관리, 승객 안전 관리까지 맡아야 하는 근무 환경에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기관사들의 설명이다. 2인 승무제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메트로의 경우 기관사의 자살 사고가 없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승무 빈도에 불만도 크다. 김중태 도시철도노조 정책실장은 "하루 업무 일과 중 승무는 2번만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현재는 기관사들의 40% 이상이 3번 이상 승무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980명의 직무스트레스 검사를 맡은 서울성모병원 김형렬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기관사들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정도는 일반인에 비해 5~6배, 공황장애 유병률의 경우 최소 10배 이상이 높게 나왔다"며 "가령 정시운행을 강조하면서도 안전운행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은 기관사들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시는 지난해 '노사간의 처우개선 합의 이행'과 '기관사 최적근무위원회 설립을 통한 처우 개선안 마련'등 2가지 개선책을 제시했지만 1년째 답보상태다.
최적근무위원회가 올해 8월 '사상사고 발생 후 정신과 상담 의무화', '승무회수 1일 2회 운영', '2인 승무 시범운영 후 전면화 검토' 등의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만들어 보고했지만 서울시는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다. 시 관계자는 "노조와 공사 측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고 아직 종합토론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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