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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의 절정, 2003년을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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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의 절정, 2003년을 되새기다

입력
2013.10.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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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한국영화의 새 장을 열어 제친 작품이다. 2003년 11월 개봉한 이 영화는 2004년 칸국제영화제에 비경쟁 특별 상영작으로 초청됐다가 경쟁 부문으로 깜짝 발탁됐다. '올드보이'의 이변은 칸영화제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 수상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영화 역사상 중대 사건이었다. 한국영화의 가장 높은 기념비 중 하나라 할 '올드보이'는 내달 다시 극장가를 찾을 전망이다. 개봉 10주년을 맞아 일종의 생일상을 받게 된 것이다. 칸영화제 수상 뒤 2004년 6월 재개봉했던 '올드보이'는 내달 개봉으로 세 번째 개봉을 하는 드문 영예를 맞게 된다.

올해 10주년 생일상을 받는 영화는 '올드보이'뿐만 아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 지난 8월 24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봉 10주년을 맞아 특별상영회를 열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도 29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봉 10주년을 축하하는 특별상영회를 가졌다.

'올드보이'의 재개봉과 '장화, 홍련' '살인의 추억'의 특별 상영은 단순한 추억 되새기기와 일회성 행사로 보기 어렵다. 영화팬들의 뜨거운 반응은 이들 영화의 유별난 완성도와 이들 영화가 개봉한 해의 특별함을 일깨운다. 김지운 감독과 주연 배우 임수정이 관객과의 대화 시간까지 함께한 '장화, 홍련' 특별상영회의 표는 행사 이틀 전 다 소진됐다. 관객들은 평일 한국영상자료원을 찾아 선착순으로 무료표를 받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1시간 30분 만에 표 320장를 동나게 했다. '살인의 추억'도 다르지 않았다. '살인의 추억' 제작에 참여한 100여명 스태프들이 초대된 29일 상영회의 표 확보 전쟁은 더욱 치열했다.

2003년 영화들이 공개적으로 열 살 '생일' 축하까지 받으며 유독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인들은 "2003년은 영화계에 있어 아주 특별한 해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2003년은 한국영화의 신예 감독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하며 재능을 꽃피운 해로 꼽힌다. 자본의 적절한 지원과 감독들의 재능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해란 평가다.

'올드보이'와 '장화, 홍련' '살인의 추억'외에도 아직도 영화팬들의 입을 오르내리는 수작들이 2003년에 쏟아졌다. 세간에 쿨(Cool)이란 단어를 유행시켰던, 임상수 감독의 서늘한 작품 '바람난 가족'이 선보였고 명품 사극을 표방한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이 관객들을 불러모았다. 장준환 감독은 한 외톨이 청년이 외계인 두목을 납치해 지구를 구하려 한다는 괴작 '지구를 지켜라'로 평단을 놀라게 했다. '원더풀 데이즈'가 개봉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 했다.

2003년은 '웰메이드'(Well-made)란 국적 불명의 영화 용어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대기업 자본의 유입으로 돈 세례를 맞았던 충무로는 2002년 위기를 겪었다. 대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예스터데이'가 관객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충무로를 초긴장 상태로 내몰았다. 빼어난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이른바 '웰메이드' 영화들이 충무로를 수렁에서 건졌다. 2003년 개봉해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받은 대부분의 영화들은 '웰메이드'라는 라벨을 달았다. 모은영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래머는 "2003년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재능들이 많이 출현한 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이후 10년 동안 한국영화를 이끄는 중추가 됐다"고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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