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나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은 오페라의 화려한 무대 의상은 전체 공연 못지않게 독자적인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이를 방증하듯 2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전시회 '눈으로 듣다: 로마 오페라극장 의상ㆍ무대디자인 100선'이 개막돼 내년 1월 5일까지 열린다. 1880년 개관한 이탈리아의 국립극장으로, 푸치니의 '토스카'가 초연(1900)되기도 한 로마 오페라극장이 오페라 및 발레 의상과 의상ㆍ무대디자인 스케치를 공개하는 자리로 이탈리아 국외에서 하는 첫 전시다. 로마 오페라극장은 건물 한 채를 통째로 기록물보관소로 써 1만 1,000점의 의상과 의상ㆍ무대 디자인을 보관하고 있다. 미래의 디자이너들이 언제든 참고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디지털 데이터로도 공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 중 이 극장에서 활동한 20세기의 대표 디자이너 25인의 작품 105점을 선보인다. 전시 작가 중에는 조각가 자코모 만주(1908~1991), 추상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1888~1978) 등 유명 미술가의 이름도 눈에 띈다. 발레 '11월의 계단'(1972)에 쓰인 알베르토 부리(1915~1995)의 무대 배경 디자인은 뉴욕 현대미술관과 스페인 소피아미술관에서도 소개될 만큼 미술적 가치를 인정 받은 작품이다. 산화 방지 시설에서 보관해 온 의상 중에는 1929년 오페라 '로엔그린'에 쓰여 80년 이상 된 두일리토 캄벨로티(1876~1960)의 작품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한국에서 오페라 의상디자이너의 위상은 높지 않은 편이다. 서양 오페라 도입 65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만큼 외국 유명 단체의 작품을 가수는 물론 무대와 의상까지 그대로 초청하는 일이 많다. 국내 디자이너의 수요는 주로 오페라를 자체 제작하는 지방 국ㆍ공립 단체나 시립 단체 정도에 그치는 데다 디자이너들도 경제적인 이유로 뮤지컬ㆍ연극ㆍ무용 등 타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으로 듣다' 전시를 위해 방한한 프란체스코 레지아니 로마 오페라극장 기록물보관소장의 "전세계 어디에서든 디자이너들이 무대 예술만으로 경제적 여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게 1900년대 예술계의 현실이었지만 시대상을 반영하는 예술품으로서 역사적인 보존 가치가 있다고 봐 의상과 무대디자이너, 그들의 작품을 존중한 것은 우리 극장의 선택이었다"는 말을 되새기게 되는 이유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