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황찬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직접 내정을 통보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자체로 문제 삼긴 어렵지만 '기춘 대원군'이라는 말까지 듣는 김 실장이 검찰총장은 물론 감사원장 인사까지 사실상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향후 진행될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거센 공세가 예상된다.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황 원장은 "후보자로 낙점 받을 때 누가 통보했는지 밝히지 않을 이유가 있냐"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질문에 처음에는 "청문회장에서 밝히도록 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박 의원이 "총리 위의 비서실장, 기춘 대원군에게서 통보 받은 것 아니냐"고 끈질기게 묻자 황 원장은 "그렇다"고 시인했다.
감사원은 수사ㆍ사법기관은 아니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감시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독립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이에 따라 향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독립성 훼손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황 원장 내정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는 황 원장과 김 실장의 지연(마산)과 학연(서울대 법대)을 근거로 "김 실장이 감사원장에 부산ㆍ경남(PK) 출신을 배치하기 위해 황 원장을 끌어온 것"이라는 설이 떠돌았다.
그러나 황 원장은 김 실장 등 청와대 고위직과 개인적 친분 관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김 실장과 황 원장이 (학연, 지연으로 얽힌) 14년 선후배 사이이고,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과는 2년 선후배"라 지적하자 "(김 실장과) 겹치는 부분은 마산중학교 출신인 것뿐"이라며 "홍 수석은 법조 선배로서 알 뿐인지 사적으로 교류하거나 만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김 실장도) 어느 모임에서 어쩌다가 몇 년에 한 번 정도 만나 인사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야당은 법원 고위직 인사를 감사원장으로 바로 내정한 것은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공박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차관급인 서울지법원장이 국가 의전서열 7위인 사정기관 수장으로 가는 인사 교류가 삼권분립 정신에 적합하냐"며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 융합' 같다, (삼권분립을 주장한) 몽테스키외가 울고 가겠다"고 비판했다.
황 원장이 감사원장으로 임명될 경우 현직 법관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판사 출신인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황 원장이 임명되면) 다음에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오는 사람은 '대통령에게 잘 보이면 감사원장 후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며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관련 재판에서 대통령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려는 유혹이 생길 수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황 원장은 "(자신의 감사원장 내정이) 사법부 독립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법관을 감사원장 후보로 선택한 것은 독립성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사청문회에서 솔직하고 소상하게 말하겠다"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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