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재래시장에 깜짝 '예술장터'가 열렸다. 집에서 직접 만든 물건들을 챙겨 나온 사람들이 즐비하게 좌판을 벌였다. 직접 만든 지갑. 직접 만든 액세서리. 직접 짠 목도리. 일일가게의 주인들은 대부분 수줍었다. 호객을 할 줄도 몰랐고 유심히 구경하는 손님에게 제 물건을 사라고 권하지도 못했다.
어슬렁거리던 나는 한 좌판 앞에 발길이 멎었다. 네댓 개 늘어놓은 못 생긴 토끼인형들을 쌍둥이 자매가 지키고 있었다. 내가 인형들을 살피자 한쪽이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저희가 토끼띠라서요, 언니가 토끼인형을 만들어요." 잠시 후 언니 쪽이 덧붙였다. "저… 하나 데려가 주실래요?" 사 달라가 아니라 데려가 달라. 그 말이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내가 체크무늬 토끼를 고르자 동생 쪽이 핀을 붙여주며 옷이나 가방에 달고 다니라고 했다. 그리고 자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예뻐해 주세요." "가서 잘 살아라." 동생은 내게, 언니는 토끼인형에게 건네는 인사였다.
집에 돌아와 인형을 꺼내 보았다. 휴. 어쩌자고 샀담. 이 나이에 백팩에 달고 다닐 수도 없고. 머리를 긁적이다 그냥 커튼 자락에 달아두게 되었는데, 이후 방에 들어갈 때마다 인형의 눈과 마주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눈이라고 해도 실은 단추일 뿐인데 말이다. 만든 사람의 갸륵한 마음과 정성이 깃들어 솜뭉치 속에서 토끼 영혼이 싹튼 것이려나. 며칠 더 두고 봐야겠다. 이 녀석과 방을 나눠 써도 괜찮을지.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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