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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노인 돌보려 폐지 줍는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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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노인 돌보려 폐지 줍는 경찰관

입력
2013.10.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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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오래된 주택들로 빼곡한 서울 강북구 송천동.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이 유독 많이 사는 이 동네엔 주민들 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영화 '홍반장'의 주인공 홍두식 같은 인물이 있다. 막힌 양변기 뚫는 일, 잠긴 문 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강북경찰서 미아3 치안센터장 박래식(57) 경위 이야기다.

25일 만난 박 경위는 손가락마다 살이 터 그 사이로 묵은 때가 시커멓게 끼어있었다. 까닭을 묻자 그는 "부끄럽다"며 허허 웃기만 했다. 박 경위는 2008년부터 순찰을 돌며 버려진 가구나 폐휴지 따위를 보는 족족 주워 자신의 차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그러니 양 손이 성할 리 없다. 그는 "재활용품을 판 돈으로 인근 효심경로당의 어르신들에게 매달 21일 간식과 음료를 대접한다"며 "경찰복 입고 폐휴지 줍는 일이 품위가 떨어지니 그만 두라는 만류도 있지만 반기는 어르신들 생각하면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2주 전엔 집 안에 열쇠를 두고 나온 초등학생이 담장을 넘으려고 친구 어깨를 타고 낑낑대는 걸 보고 대신 담을 넘다가 방범용 쇠꼬챙이에 찔려 정강이를 다친 일도 있다. 그는 이런 자잘한 동네 민원을 바로 해결해 주기 위해 배관공처럼 출근 가방에 항상 멍키스패너, 드라이버, 줄자, 문고리 등을 챙겨 다닌다.

박 경위가 특히 신경을 쓰는 이는 혼자 사는 노인들. 그는 "매일 순찰을 돌며 식사는 하셨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해 8월 그는 반지하 단칸방에 홀로 사는 임옥순(88ㆍ여)씨 집에 들렀다가 임씨가 낡아 우그러진 장판에 걸려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안을 둘러보니 10년도 넘은 장판이 반지하의 습기에 삭을 대로 삭아 여기저기 부푼 상태였어요. 누구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 돕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박 경위는 그날로 미끄럽지 않은 재질의 장판을 사왔다. 단칸방이라고 해도 혼자 가구를 다 들어내고 새로 장판을 까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업무 틈틈이 장판을 가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예전엔 경찰이 무서운 줄만 알았는데, (박 경위를 보니) 좋은 양반도 있구나 싶어. 집에 있는 가구들도 이 사람이 가져다 줬어." 임씨가 박 경위의 팔을 꼭 잡고 말했다.

박 경위는 자원봉사자,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 10여명과 함께 두 달에 한 번 치안센터에서 100~200포기씩 김치를 담가 취약계층 가정 60곳에 전달하고 있다. 그는 2005년부터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김장을 해왔는데, 미아3 치안센터에서 담근 김치만 해도 2,500포기에 달한다. 다음달엔 연말을 맞아 1,000포기를 담글 계획이다.

그가 이처럼 독거노인 등을 돕게 된 계기는 뭘까. 박 경위는 지갑에 넣어둔 어머니 사진을 보여줬다. "어르신들을 보면 20여년 전 돌아가신 제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께 다 못한 효도를 하는 것 같아 오히려 제 기분이 더 좋습니다."

최근 그에겐 새 취미가 생겼다. 집에 있는 옷가지, 책, 그릇 따위를 미아동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는 일이다. "그 동안 집사람 몰래 700점 정도 기부했어요. 그러다 얼마 전에 들켰는데 다행히 집사람도 반기더라고요."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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