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을 할 때에 그 말로 오히려 정반대의 현실이 드러나면, 우리는 그것을 역설(逆說)이라고 한다. 피노키오의 코가 거짓말 할 때마다 자라난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피노키오가 "내 코가 지금 자라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피노키오가 거짓말 하고 있다는 자신의 말이 참말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거짓이다. 코가 자라고 있으니까. 그런데 반대로 피노키오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참이다. 마찬가지로 코가 자라고 있으니까.
요즘 정치인들의 언행과 행태를 바라보면 이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떠오른다. 물론 정치인들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올바른 정치만이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정치가 거짓이라면 그 어떤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국민과 민주적 정치의 관계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올릴수록, 그들의 실제적 관심은 국민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정권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민주정치를 할 때는 오히려 국민이라는 말을 덜 쓰고, 그 권력의 토대와 정당성을 상실하면 할수록 국민을 더욱 더 애타게 찾는 현상을 우리는 '정치적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역설적 현상이 요즘 '민생'과 '민주'의 대결로 나타나고 있다. 한쪽에서는 민생을 위해 정쟁을 그만두라고 소리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 정쟁이 민주를 위한 불가피한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편이 맞는 말일까? 누가 참말을 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인들이란 본래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면서 참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이런 정치적 판단의 난국으로부터 빠져 나오려면, 민생과 민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이 '민생'을 강조할 때마다 벌이는 이벤트가 있다.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일반국민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시장이니 대통령이 전통시장을 찾는 것을 탓할 일은 못된다. 시장에 가서 고추 및 호박잎도 들어보고, 어묵과 찐빵도 먹어보고, 시장 상인들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장본 것은 정말 저녁 식탁에 오를까? 대통령의 전통시장 방문으로 상권이 진짜 살아날까? 어쩌다 한번 지하철을 타본다고 친서민이 되지 않는 것처럼, 전통시장을 방문한다고 민생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
만약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런 정치 쇼를 꿰뚫어 본다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 시장방문의 북새통을 치르고 난 뒤에도 가라앉은 경기는 그대로이고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 국민은 민생을 생각한다는 대통령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국민의 삶, 즉 민생이 최우선 순위라는 대통령의 말은 역설적이게도 민생 현장을 찾으면 찾을수록 거짓말이 된다. 이런 모순적 현상은 어쩌면 민주주의가 문화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민생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근본가치와 결합돼 있다.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민생은 국민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평등한 기회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에겐 이런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바로 민주의 문제이다. 국민의 행복은 오직 민주적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가 바로 민생이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들은 민주가 마치 민생의 장애물인 것처럼 말한다. 우리 민주주의의 짧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민'과 '민생'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일수록 비민주적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정치의 역설을 극복하여 전통시장을 방문하지 않으면서도 전통시장을 살리고, 민생을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합해 국민 행복을 증진시키는 진짜 대통령을 한 번 보고 싶다.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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