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제품과 부품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한 삼성이 다음 목표를 '소재'로 정했다.
제조업 생산은 소재로 부품을 만들고, 부품을 조립해 완제품을 만드는 일관체계를 갖고 있다. 때문에 소재산업은 제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산업이다.
삼성의 경우 전자분야에서 TV 휴대폰 등 완제품과 반도체 LCD 등 부품에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지만 소재산업은 아직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삼성은 이에 따라 미래의 사활을 걸고 소재 쪽에 총력전을 펴, 소재-부품-완제품으로 이어지는 세계 최고수준의 일관생산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28일 삼성에 따르면 소재기술의 메카가 될 '삼성 소재연구단지'가 5일 개관과 함께 공식 가동에 들어간다.
수원 옛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건물이 있던 42만㎡ 부지에 들어설 이 단지는 총 20여 개 연구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삼성전자(종합기술원) 뿐 아니라, 삼성SDI 삼성정밀화학 제일모직 등 소재관련 모든 계열사의 핵심연구인력 2,000여명이 함께 근무하게 된다.
이들 4개사 소재 분야 연구 인력은 내년부터 개별 및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데, ▦미래소재 그래핀 ▦플렉서블(휘어지는)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등이 우선 연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향후 소재분야 연구개발은 반도체나 스마트폰 수준 이상으로 과감하고 밀도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소재육성전략은 연중 최대 기술잔치인 '삼성기술전'의 올해 주제가 소재로 선정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다음달 4일부터 8일까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주관으로 기흥 캠퍼스에서 열리는 삼성기술전의 하이라이트는 '올해의 테마관'인데, 이곳 주제가 올해 소재로 결정된 것이다. 한 관계자는 "올해의 테마는 삼성의 미래화두라고 보면 된다. 소재가 주제로 선정됐다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제일모직 패션부문의 삼성에버랜드 이관, 미국 코닝사의 최대주주 지위예약 등 그룹차원에서 단행한 일련의 사업구조조정 조치도 결국은 소재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제일모직의 경우 뿌리는 의류직물이지만, 이미 전자 소재부문이 절반을 넘은 상태. 제일모직을 글로벌 소재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선 패션부문 이관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제일모직은 또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의 핵심기술과 특허를 다량 보유한 독일 노발레드를 인수, 소재전문기업으로 발 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미 코닝사의 1대 주주 지분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 코닝은 스마트폰에 널리 쓰이는 특수유리 '고릴라'와 세라믹 소재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수준을 보유하고 있는데, 삼성은 이번 딜을 통해 유기화학 뿐 아니라 무기화학 소재분야로도 기반을 넓힐 수 있게 됐다.
삼성이 지난 6월 세운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도 눈 여겨 볼 부분. 삼성은 2022년까지 1조5,000억 원을 출연해 ▦소재 기술 ▦기초 과학 ▦정보통신기술(ICT) 융합형 기술 등 3대 프로그램 중 혁신적 아이디어를 낸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신 물질이나 과학적 규명이 부족해 상용화가 어려운 물질 등 국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독창적 소재 연구를 100개까지 뽑아, 설계부터 가공, 상용화까지 도울 방침이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삼성이 완제품과 부품에선 패스트팔로어(빠른 속도로 기술, 제품 선도기업을 따라잡는 것)로서 능력을 발휘해 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결국은 수명이 길면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원천 소재 기술을 보유한 기술 중심기업으로 전환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최근 " 완제품은 세계 1등을 달성했고, 부품도 어느 정도 됐는데 이젠 소재에서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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