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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 깃든 신의 목소리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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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 깃든 신의 목소리 들리는 듯

입력
2013.10.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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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완벽한 글쓰기를 추구하고 아름다운 글씨를 열망하는 자여, 당신이 진정으로 쓰기에 전념한다면 신은 기꺼이 이를 쉽게 해줄 것이다.'

10세기 말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서가(書家) 이븐 알 바왑이 남긴 이 시는 이슬람권에서 글씨 예술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평민으로 태어나 당대 최고의 캘리그래퍼가 됐다. 알 바왑은 스승인 이븐 무클라가 아랍 문자를 6개의 서체로 집대성한 육서체(al aqlam al-sitta)를 체계화, 각 글자의 폭과 높이를 규격화했다. 다른 언어권 사람들의 눈에 그림이나 기호처럼 보이는 아랍 문자는 이미 2000여년 전에 그 형태와 질서의 기본 틀을 갖춘 셈이다.

사람이나 동물을 형상화하는 것을 우상 숭배로 보고 금지했던 이슬람교에서 글씨는 신의 목소리인 쿠란을 시각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구전 문화였던 쿠란이 의미 왜곡을 막기 위해 필사 문화로 바뀌면서, 손으로 쿠란을 쓰는 것은 그 자체로 종교 행위나 다름 없었다. 아름다운 글씨체가 곧 최고의 찬송가요, 가장 영적인 그림이었던 셈이다.

한양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슬람 캘리그래피-신의 목소리를 보다'전시는 이슬람권에서 다른 어떤 예술보다 숭고한 장르로 추앙 받아온 캘리그래피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한다. 초기 쿠란에 보이는 쿠파체부터 오늘날 폰트로 전환돼 널리 쓰이고 있는 나스흐체, 술루스체 등 다양한 서체와 그릇, 도기, 타일, 건축물 등에 캘리그래피가 폭넓게 쓰인 사례들을 모아 놓았다.

"과거 이슬람권에서 캘리그래퍼의 위상은 화가들보다 높았습니다. 왕실에서 캘리그래피 공방을 운영하기도 했고 황제나 왕자 중에 위대한 서예가도 많았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황나영 학예연구사는 캘리그래피 작업장이자 도서관인 '키탑하나'를 통해 수백 년간 축적된 캘리그래피의 전통과 유산이 계승∙발전됐다고 설명했다. 키탑하나의 책임자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들이 맡았고 이들 대부분은 왕의 총애를 받았다.

캘리그래피와 함께 이슬람 예술의 한 축을 이루는 세밀화와 과거 신라-페르시아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서사시 '쿠쉬나메'도 비중 있게 소개됐다. 이슬람권에서 인물 묘사는 암묵적인 금기지만 독립된 회화가 아닌 문서를 부연 설명하기 위한 '기능적' 그림은 허용됐는데, 이것이 세밀화다. 태생이 삽화다 보니 그림의 크기가 책자 정도로 작은 것이 특징이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눈알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돼 있어 세밀화라는 명칭이 붙었다. 부연적 기능을 가졌던 세밀화는 차츰 위상이 커져 독립된 회화 장르로 발전했다.

전시장 위층에는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활약 중인 현역 캘리그래퍼들의 인터뷰가 상영되고 있는데, 이슬람권 캘리그래피 업계의 현안과 다양한 의견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접시에 '적은 음식으로 건강을'이라는 글씨를 넣음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우즈베키스탄 캘리그래퍼에 이어 "휴대전화 케이스에 캘리그래피를 넣는 것은 이슬람교 전통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하는 터키 캘리그래퍼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 24일 시작돼 내년 2월 22일까지 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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