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에서 '대탕평' 원칙이 아예 사라졌다. 청와대와 내각, 권력기관 전반에서 특정지역 편중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국민대통합'과 '100% 대한민국'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박 대통령이 단행한 최근 인사를 보면 영남 출신 일색이다. 공석이었던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에 각각 내정된 황찬현 후보자와 김진태 후보자가 모두 부산ㆍ경남(PK) 출신이다.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감사원과 검찰, 경찰, 국세청 가운데 2곳의 수장이 특정지역 출신으로 채워지게 됐다. 정치권 안팎에선 "지난 8월 PK 출신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 영남 출신의 요직 독식이 본격화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의 영남 편중 인사는 사실 오래된 이야기다. 청와대 비서진은 지난 8월 개편으로 김 실장을 정점으로 하는 '영남 단일체제'가 구축됐고 4대 권력기관의 편중 인사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진행돼 왔다.
안전행정부의 국회 국정감사 제출 자료에 따르면 4대 권력기관의 고위직 인사 10명 중 4명은 영남 출신 인사로 채워져 있다. 이들 기관의 고위직 152명의 출신지역은 대구ㆍ경북(TK)이 35명(23.0%)으로 가장 많았고 PK가 27명(17.8%)으로 뒤를 이었다. 영남 출신이 40.8%에 달한다. 이어 서울ㆍ경기ㆍ인천 출신은 32명(21.1%)이었고, 광주ㆍ전남ㆍ전북은 27명(17.8%), 대전ㆍ세종ㆍ충남ㆍ충북은 21명(13.8%)으로 집계됐다.
내각의 지역 편중도 정부 출범 당시부터 확연했다. 정부 조각 당시 17명의 장관 중 서울 출신이 9명, 영남 출신이 4명으로 두 지역 출신의 비중이 무려 76.5%나 됐다. 반면 호남 출신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등 2명뿐이었다. 이후 국방부 장관에 호남 출신인 김관진 장관이 유임되긴 했지만 이는 영남 출신인 김병관 후보자가 각종 비리 의혹 때문에 낙마한 결과였다. 17개 부처 장ㆍ차관과 청와대 수석ㆍ비서관까지 범위를 넓혀도 수도권 출신이 28명, 영남 출신이 26명인데 비해 호남과 충청 출신은 각각 14명에 그쳤다.
박근혜정부도 초반에는 지역 편중 논란을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임명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이례적으로 "지역을 고려했다"고 설명한 게 단적인 예다. 서울 출생이지만 부친 대(代)까지 전북 군산에 살았고 채 전 총장이 매년 군산에 있는 선산에 다닌다는 말까지 했었다.
하지만 채 전 총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과정에서 권부의 의중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자 "채 전 총장은 이명박 정권 사람"(이정현 홍보수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 파동으로 낙마하고 채 전 총장도 혼외자 의혹으로 사퇴하면서 대탕평 원칙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영남 출신에 대한 중용은 자칫 호남 소외론을 불러 국민대통합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