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 불시착 사건의 국내 피해자들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 유치에 나선 한 미국 로펌이 지나치게 높은 성공보수료를 요구하는 등 무책임한 수임활동을 벌이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아시아나 항공기 불시착 국내 피해자 A씨는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의 R로펌 관계자들을 만났다. A씨는 "미국인 변호사 2명과 브로커 역할을 하는 스페인 출신 외국인 한 명, 통역사 등과 만났는데 고객을 대하는 태도나 뉘앙스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계약 조건을 다른 법조인에게 자문했더니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R로펌과 접촉한 B씨도 "국제법을 모르는 고객에게 설명도 거의 없이 계약만 요구해 의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나친 수임료다. R로펌은 배상액의 33%를 성공보수료로 요구했는데, 국제 법률 시장에서 항공 소송의 성공보수가 18%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높다. 또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거액의 선지급금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R로펌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가진 한 변호사는 "R로펌이 국내 로펌들에도 자신들의 소송을 보조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파트너 계약을 맺자고 접근했다"며 "현지 평판을 확인해 보니 미국에선 R로펌을 전형적인 '앰뷸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사건 현장을 쫓아 다니며 합의금을 노리는 변호사)'라고 평가했고, 대부분의 수익이 보험사와 합의해 주고 받는 보수일 뿐 미국 내 소송 경험도 거의 없는 사실을 확인하고 제안을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R로펌이 국내 호객행위까지 나선 이유는 이번 사건이 징벌적 손배가 가능한 미국에서 최대 수백억원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 정도의 배상액이 인정되는 것과 비교된다.
특히 국내 피해자의 경우 경미한 타박상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질환이 대부분인데, 한국 법원은 아직 PTSD 질환에 대한 보상에 인색한 편이라 R로펌이 이를 적극적으로 영업에 활용하고 있다. 국제 소송 경험이 많은 국내 로펌의 한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배심원의 판단으로 배상액이 결정돼 아무래도 한국보다 피해자에게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는 경향이 있고, PTSD 질환에 대해서도 폭넓게 배상을 인정하는 추세라 R로펌 같은 곳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부 국내 로펌은 지난 달 미국변호사협회에 R로펌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도 미 변협에 비슷한 취지로 R로펌의 변호사법 위반 사례를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 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미국 로펌이라 무턱대고 믿지 말고 국제 소송 및 자문 등의 경험이 있는지 상세히 알아본 뒤 계약을 맺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선 법무법인 지석이 9ㆍ11테러 등 항공사건 소송에 특화된 미국의 크라인들러&크라인들러(Kreindler & Kreindler) 로펌과 함께 국제소송의 실익 등 법률 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현장 검증을 마친 상태다. 바른도 이달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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