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오후 201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서울 잠실구장을 찾아 '깜짝 시구'를 했다. 프로야구 시구에 나선 대통령으로는 네 번째이며, 한국시리즈 시구로만 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5년 시구한 후 18년만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쯤'KOREAN SERIES'라는 글귀가 새겨진 남색 점퍼와 흰색 운동화를 착용하고 왼손에 태극기가 그려진 글러브를 낀 채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전광판에는 '대통령 박근혜'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떴다. 박 대통령은 주심의 안내에 따라 투수 마운드가 아닌 홈에서 가까운 잔디 위에서 공을 던진 뒤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관중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VIP 석에서 'K'라고 적힌 파란색 국가대표 야구모자를 쓰고 서울 언북중학교 야구부원들과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
이날 시구 일정은 경호 문제로 인해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도 행사 직전 통보될 정도로 비밀에 붙여졌다. 당초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주전 3차전 시구 요청을 했다가 이날 오전에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깜짝 등장은 혼란한 정국 속에서 최고의 인기스포츠를 통해 대중과의 스킨십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국 현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말이 많았고, 지지율이 하락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이 종종 야구장을 찾긴 했으나 야구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한국시리즈의 대통령 시구는 꽤 오래 만에 이뤄진 이벤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개막전 시구를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과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와 1995년 개막전 시구 등 세 차례나 등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7월 대전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찾아 시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개막전 시구를 할 예정이었지만, 사전에 정보가 유출되면서 경호 문제로 취소됐다. 다만 2011년 9월 가족과 함께 잠실야구장을 방문해 김윤옥 여사와 키스타임을 가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통령의 스포츠 정치는 이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8년 미국 메이저리그팀 세이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를 향해 공을 던지는 시구를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더 적극적이었다. 고교 야구 무대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던 박 전 대통령은 197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박대통령컵쟁탈아시아축구대회'(박스컵)를 창설해 단골 시축자로도 나섰다. 한국의 발전상을 알리고 국민적 자긍심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시키며 시축자로도 나섰다. 권위주의적 통치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스포츠 이벤트를 활용한 측면이 많았다. 그러다 당시 시구나 시축은 대부분 정치인 등 유력 인사 위주로 이뤄져 큰 관심을 못 받는 의례적 행사에 그쳤다. 시구가 근래 각광 받게 된 것은 정치인 등을 가급적 배제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마운드에 올렸기 때문이다. 정치와 스포츠는 일종의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에 있는 셈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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