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하는 친구 A가 메일을 보내왔다. '해방촌 빈가게'라는 곳에서 낭독도 하고 노래도 하는 조촐한 자리를 만들자고 했다. 알겠다고 바로 답신을 넣었다. A와 뭔가를 함께 한다는 것도 좋았지만, 장소가 남산 밑 해방촌이라는 것에도 '빈가게'라는 이름에도 마음이 끌렸다. 날이 되었다. A와 내가 꾸린 자리에는 동네사람을 비롯해 스무 명 정도가 함께 했다. '빈가게'는 그런 곳이었다. 동네사람이 함께 운영하고 함께 누리는 곳. 동네사람을 위한 작은 모임이나 공연이 열리는 곳. 또한 '빈가게'는 게스트하우스 '빈집'에 딸린 카페이기도 했다. 동네의 빈집과 낡은 집을 개조해 만든 이 숙소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고 했다. 낭독과 노래의 시간이 끝난 후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고마운 말을 건넨 사람이 있었다. "이 동네에 외국인이 많아서 이즈음만 되면 할로윈 주간이라고 엄청 들썩들썩한데요, 시랑 노래랑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니 이것도 나름 멋진 해방촌의 시월 말이네요." 그렇게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며, 몇몇은 맥주를 마셨고 누군가는 뜨개질을 했고 누군가는 콧노래를 불렀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숙제를 하다가 갔고, 산처럼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일본남자가 쉬다가 갔다. 따로 또 같이 보내는 조용한 시간이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나의 부러움과 함께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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