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지난 6월 '국정원 댓글 사건 정국'이 시작된 이후 궁지에 몰릴 때마다 '대선 불복'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 확산되려는 고비고비마다 야당에 '대선 불복 프레임'을 덧씌워 수세를 탈출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우선 지난 6월 11일 검찰의 기소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드러난 이후 주말마다 진실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외치는 집회가 잇따르자 여권은 대선불복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면서 여권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7월15일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나서 "민주당은 분명하게 대선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 해야 한다. (대선)불복이면 불복이라고 말하던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사실상 처음으로 '대선 불복' 프레임을 거론한 것이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며 '국정원 댓글 정국'이 본격적으로 점화하기 시작한 8월에도 여권은 대선 불복 카드를 들고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은 2008년 대선에 불복하면서 촛불집회를 일으키면서 나라를 아주 어지럽힌 전례가 있다. 이번 대선에도 불복하는 심리가 민주당 저변에 깔려있다"고 말했다. 홍문종 사무총장도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가 등장하는 등 대선 불복 성격이 짙다"며 "민주당이 대선불복을 방조하는 것이고 대선 불복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댓글 정국은 쉽사리 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8월19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에 출석해 "국정원과 경찰이 진실을 은폐했다"고 폭로하면서 댓글 정국은 더욱 뜨겁게 달아 올랐다.
최근 여권이 '대선 불복 프레임'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민주당 문재인 의원의 '대선 불공정성' 발언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하지만 검찰이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장을 수사에서 배제하고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댓글 의혹까지 불거지는 등 여권 입장에서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문 의원이 계기를 만들어 준 측면이 크다.
이와 관련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25일 작심하고 새누리당의 노림수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불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집권세력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그리고 진실을 숨기려고 노골적인 수사 방해와 외압을 행사했던 실태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매번 대선불복을 외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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