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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의 온도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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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의 온도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입력
2013.10.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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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가 없던 시절 온도라는 개념 만들고온도계 발명한 과정 다뤄'과학이란 튼튼한 반석 위의 집' 고정관념에 도전장 던져과학사에 대한 철학적 분석… 첨단 과학연구와 상보적 관계이러한 '대안 과학'은 비판적 지각 기르는 데 도움 줘

"토대가 잘 다져진 믿음의 토대에는 토대가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 (비트겐슈타인)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의 역작 의 말미에 "다리 거리 다리"(Bridge St. Bridge)라는 재미있는 다리가 하나 소개된다.

마을에 다리가 하나 밖에 없어서 '다리'라고 하면 그게 무엇을 지칭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시절, 그 다리로 이어지는 길이 '다리 거리'(Bridge St.)라고 불렸다. 그런데 마을이 발전하면서 다리가 여럿 더 생겼고, 이제는 그냥 '다리'라고 하면 그게 어느 다리를 말하는지 알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리 거리'는 누구나 다 아는 거리였기 때문에, 이제 그 첫 번째 다리에는 '다리 거리'에 붙어 있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다리 거리 다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다리가 거리를 정하고, 그렇게 정해진 거리가 다시 다리를 만들었다. 장 교수는 과학의 발전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우리는 과학이 아주 튼튼한 반석 위에 잘 지어진 집이라고 생각한다. 은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진다. 이 책은 시작부터 논쟁적이다. 우리는 온도를 온도계로 잰다. 그렇다면 온도계가 정확하다는 사실, 혹은 온도를 재는 물질이 일정하게 팽창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른 말로 하자면, 온도계의 온도는 어떻게 잴 수 있는가? 아마 독자들은 어디엔가 표준 온도계가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온도계는 이 표준 온도계에 맞춰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 표준 온도계가 온도를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물의 끓는점을 100도로 정의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 19세기 프랑스 과학자 게이-뤼삭은 금속의 용기에서 물이 100.000도에서 끓는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공기를 뺀 물이 137도에서 끓는다고 보고한 경우도 있었다. 물의 끓는점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많은 실험을 했던 장-앙드레 드 뤽은 물이 끓는다는 현상을 일반 끓음, 치익 소리, 요동 끓음, 폭발, 빠른 증발, 부글거림으로 분류했는데, 이 각각의 온도가 다름은 물론이었다. 결국 이 논쟁과 이견들은 물이 끓으면서 발생하는 증기의 온도를 기준점으로 정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이런 방식에 대해서 모든 과학자들이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고정점이 정해진 뒤에 과학은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사실로 기술하기 시작했다.

물의 끓는점에 대한 논쟁을 1장에서 다룬 뒤에, 온도계의 표준의 문제가 2장에서 나온다. 18세기 과학자들은 많은 실험 끝에 수은 온도계가 가장 일정하게 팽창하며, 따라서 믿을만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칼로릭(caloric)이란 가상적인 입자가 열을 만든다는 칼로릭 이론이 등장하고, 이 이론가들은 수은의 정확성을 공격하면서 액체가 아니라 기체를 사용한 온도계만이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쟁 속에서 프랑스 과학자 빅토르 르뇨는 실험 장치들이 "동일한 조건에서는 언제나 동일한 기록을 보여줘야 한다"는 '비교동등성 원칙'에 입각해서 수은 온도계와 공기 온도계를 비교하는 정교한 실험을 수행했고, 이 둘 중에 공기 온도계가 더 정확하고 믿을만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르뇨의 실험은 온도계의 표준과 관련해서 확고한 토대를 제공한 실험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르뇨의 비교동등성 원칙에 동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르뇨의 원리는 물리적 속성이 특정 상황에서 단 하나의 값만을 가진다는 원리에 근거한 것인데, 장하석 교수는 이런 원리가 검증되지 않았고 검증될 수도 없는 것이지만 과학자들에게 세상에 대한 기본 인식을 제공하는 존재론적 원리의 하나의 사례라고 해석한다. 이런 의미에서 르뇨의 비교동등성은 '인식적 덕목'인 것이다.

이런 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는 과학의 역사와 철학이 높은 수준에서 융합되어 있다. 역사적 논의는 매우 상세한데, 여기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처럼 우리가 잘 아는 과학자가 아니라, 드 뤽, 르뇨, 캐븐디쉬, 허친스, 웨지우드, 픽테, 윌리엄 톰슨처럼 과학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과학자들이다. 철학적 논의도 만만치 않다. 존중의 원리, 인식적 반복, 중간단계 규칙의 강건함, 존재론적 원리, 중첩결정, 조작주의, 서로 받쳐주기, 조작화, 진보적 정합론 같은 개념들은 장하석 교수가 새롭게 창안하거나 해석한 것들이고, 과학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없이는 그 의미와 의의를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다. 물론 과학, 역사,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세심하고 끈기 있게 책을 읽어야 한다.

과학자들도 기억을 못하는 과거의 과학에 대한 이런 상세한 역사적, 철학적 분석이 힉스 입자와 포스트 게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냉(冷, cold)이 복사열처럼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픽테의 실험은 당시에도 이해가 안 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실험을 재연한 두 물리학자의 1985년 논문은 장 교수를 포함해서 딱 두 번 인용이 되었을 뿐이다.

장하석 교수는 현재의 과학이 과거의 과학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온도에 대한 연구에서 보였듯이, 온도에 대한 과거의 연구의 대부분은 그냥 잊혀지고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는 이런 지식을 복원하는 과학사ㆍ과학철학적 연구를 '상보적 과학'이라고 부른다. 첨단을 달리는 과학 연구와 상보적 관계에 있다는 의미인데, 이런 일종의 대안 과학은 세상에 대한 비판적 지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보적 과학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이 가능할 것인가?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데에도 인색한 대학과 연구재단이 상보적 과학을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을 하는 대신에, 장하석 교수는 벌써 이에 대한 다른 프로젝트를 열심히 진행 중이다. 책의 마지막에 썼듯이 "그것은 아주 멀리 나아가는 발걸음이며, 그 덕분에 교육받은 대중은 우리 우주에 대한 지식을 세우는 일에 다시 한 번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확신을 하기에.

장하준 교수의 동생… 20代에 런던대 교수… 과학철학계의 노벨상 '러커토시상' 수상

●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장하석(46)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양자물리학의 측정과 비통일성'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박사후 과정을 거쳐 20대 후반에 런던대 교수가 됐다. 2005년 영국과학사학회에서 뛰어난 저술가에게 주는 '이반 슬레이드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으로 '과학철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받았다. 로 유명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의 친동생이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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