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40)의 새 장편소설 을 읽으면서 1970년대 한국문학의 파란이었던 박상륭의 를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뒤얽힌 서사 자체가 죽음을 연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됐으며, 다양한 인물들은 신화와 종교와 철학,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학의 모티프들을 소설적으로 구현하는 데 봉사한다. 그렇다고 화자가 나서서 현학적 장광설을 늘어놓는 관념 일변도의 소설은 아니다. 관념적 주제를 다루되 단 한 순간도 인물들로 하여금 쉬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 서사의 역동성은 이 소설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일상에 점철된 가학과 폭력을 그려온 백가흠의 소설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도래한 것만은 확실하다.
영국과 프랑스, 아랍과 태국, 베트남과 한국 등 그야말로 다국적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그러나 '숲'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향해 서사가 축조돼 있다. 그래서 제목이 '향(向)'이다. 제각기 상처를 지닌 인물들은 아마 인도나 태국의 어디쯤인 듯한 곳에 여행자 혹은 이민자 내지는 도망자의 신분으로 몰려들었다. 영국인 케이는 양아버지와 이제 막 여자아기를 출산한 어머니, 다섯 형제가 불에 타 죽은 집에서 혼자만 빠져 나와 살아남은 후 말을 잃었던 적이 있고, 그의 연인 줄리아는 암스테르담의 사창가에 몇 년 간이나 붙들려있다가 가까스로 도망친 인물이다. 한국인 해성은 운동권 프락치에서 국회의원까지 변신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다가 한 순간 몰락하고, 아랍인 벤암미는 파리 북역에서 소매치기와 인신매매를 일삼다가 산 채로 땅에 묻힌다.
그들은 저마다의 동선으로 움직이다가 '숲'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곳에서 길을 잃거나 사투 끝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서 빠져 나온다. 그곳은 "영원의 맨 처음이 천천히 흐르고 있는", 죽은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곳. 흔한 말로 사후세계다. 하지만 숲을 헤매는 인물들은 대체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환난의 한가운데서 혼절하듯 잠이 든 인물들은 잠에서 깨보니 숲 한가운데 누워있고, 그곳에는 루카스라는 사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죽은 이들이 사는 마을에서 어떤 사람들은 또 다시 죽고, 어떤 사람들은 다시 살아난다. 죽음과 재생이 무한 반복되는 이 영원의 세계에도 권력투쟁이 있고, 희생제의가 있으며, 폭력과 구원, 공감과 용서가 있다. 작가가 그려낸 죽음 이후의 이 세계는 너무도 복잡한 나머지 그 의미는 저마다의 독법으로 읽어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삶의 세계와 꼭 닮았다는 것, 그것이 반갑기는커녕 우주의 한가운데 버려진 것처럼 무섭고 아득할 뿐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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