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서 집에도 한기가 돈다. 벌써부터 겨울을 날 게 걱정이다. 외풍이 심한, 1980년대에 지어진 단독주택에 사는 나는 거실의 온도를 감지하고 있어도 밖의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안에서 밖을 넉넉하게 내다보고 감지한다는 점에서 이 집은 나에게 하나의 '요새'다. 사실 이 집은 1970년대부터 비슷비슷하게 지어진, 양옥구조에 기와지붕을 얹은 수많은 2층짜리 입식한옥들 중 하나인데, 돌아가신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이런 집을 가리켜 자못 냉소적인 어조로 '박조(朴朝)건축'이라고 불렀다는 걸 몇 년 전 건축가 승효상의 글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박조건축'이라는 말은 이성계의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축 양식을 '이조건축'이라고 하는 것처럼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절부터 새마을 운동의 소산으로 똑같은 형태의 건축물이 전국적으로 지어졌음을 비꼬기 위해서 나온 말이다. 고속도로나 국도를 달리다가 농촌 마을을 지나다 보면 창 밖으로 비슷한 단독주택들이 일렬로 늘어선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이것들이 모두 박정희 정권 때 지어졌거나, 그때부터 정형화된 양식에 따라 후대에 지어진 건축물인 것이다. 건축 미학이나 주변 생태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집을 붕어빵 찍듯이 찍어댔던 것이 건축가의 눈에 보기 좋았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외풍은 어떻게 잡나.
소설가 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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