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나무 수십 그루가 있었는데 숲 바깥에 이르자 오솔길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 말을 돌아 들어가자 벼랑이 험준하고 수풀이 우거졌는데 개울물과 길이 굽이굽이 돌고 돌아 어찔하였다…사방의 산이 벽처럼 우뚝 솟아 있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데, 멀고 가까운 곳의 복숭아 나무가 붉은 노을에 어리비치고 있었다.'
조선 최고의 화가로 알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꾼 꿈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조선의 정치적 격랑 속에 희생된 안평대군의 허망한 꿈을 담은 이 걸작은 계유정난(1453년) 때 홀연히 사라졌다가 1893년 엉뚱하게도 일본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김경임 중문대 교수의 는 몽유도원도의 탄생과 그 안에 담긴 시대ㆍ문화적 의도, 일본에서 숱한 소유주들을 거쳐 덴리대 중앙도서관에 안착하기까지 그림이 겪은 유랑의 시간들을 되짚는다.
저자는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몽유도원도를 보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고도 30초 밖에 관람을 허용 받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분노했다고 한다. 게다가 몽유도원도에 대한 연구가 일본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을 보고, 한국 연구자의 시각에서 이 그림을 해석해야겠다고 결심, 이 책을 쓰게 됐다.
책은 무릉도원의 주인인 안평대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저자는 몽유도원도를 한 왕자의 야심 찬 정치 출사표로 보는 시각과 달리, 왕실의 피를 받은 풍류가가 정쟁에 염증을 느끼고 제출한 사표로 해석한다. 수양대군의 대대적인 숙청 당시 안평대군의 집, 별장, 작업실이 모두 불타 없어졌을 때도 무릉도원도만은 안전했던 이유에 대해선 '최후를 예감한 안평대군이 무릉도원도를 따로 보관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금은 직접 눈으로 보고 연구할 수도 없는 몽유도원도에 대한 국내 학자의 집요하고 설득력 있는 분석이 자못 흥미롭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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