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45)씨는 2009년 동양증권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통장을 만들었다. 처음 거래하는 고객이 작성하는 투자성향표에 김씨는 '월소득 없음' '투자경험 없음' 등으로 표시했다. 전형적인 안정추구형 투자자였다. 하지만 동양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 후, 동양증권을 찾아가 "투자성향이 안정형인데 왜 투자부적격 상품을 팔았냐"고 따지자 직원은 '적극투자형'이라는 투자성향표를 주었다. 2009년 작성한 것은 폐기했다고 했다. 자신은 본 적도 없는 이 표에는 본인의 월 소득이 100만~300만원으로 표시돼 있었고 '널리 알려진 금융투자상품의 구조 및 위험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24일 본보 취재결과 김씨를 비롯 동양 회사채ㆍCP 투자자들 중 수십명은 투자 성향이 자신도 모르는 새 안정형이나 안정추구형에서 위험중립형이나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 등으로 바뀌었다고 증언했다.
임모씨는 2011년 CMA 계좌를 개설 당시 직접 작성한 투자성향표에 '안정추구형'으로 돼 있었으나 현재는 '위험중립형'으로 고쳐져 있다며 사진을 기자에게 보냈고, 한모씨도 약 4년 전 작성한 투자성향표에는 '안정형'이었으나, 본인과 시부모의 성향이 모두 '적극투자형'으로 수정돼 있었다. 오모씨는 직원에게 바뀐 투자성향표에 대해 항의했더니 직원이 임의로 바뀐 것을 인정하며 "지점용은 모두 공격투자형으로 해 놓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증권사에서 관리하는 고객 투자성향표는 상품을 권할 때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안정형 고객에게 투자부적격인 동양증권 회사채나 CP를 판매하면 안 된다. 동양증권 직원이 계열사 채권ㆍCP를 팔기 위해 투자성향을 임의로 바꿔 놓은 경우가 속출한 이유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만약 투자성향표를 조작한 사례가 많다면 사문서 위조이며, 조직적인 범죄"라면서 "현재 불완전판매 점검 중인데 그런 사례를 많이 듣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피해자는 "아직 피해자 상당수가 '투자성향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잘 모른다"면서 "제대로 조사하려면 증권사로부터 고객 본인이 직접 체크한 원본을 받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동양증권 고객 상당수가 투자설명서 조차 제대로 받지조차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산관리비타민'이라는 필명으로 피해자 600여명에게 녹취록과 서면자료 등을 받아 상담한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체의 약 20% 정도는 투자설명서에 서명이 없거나 직원이 고객 도장을 파서 대신 서명하는 등 '사기' 수준으로 당했다"면서 "투자설명서에 도장이나 서명이 없는 경우가 100명이 넘을 정도"라고 전했다.
금감원 검사와 검찰 수사 결과 이 같은 일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동양증권의 사기판매 혐의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LIG건설 CP 사태의 경우 법원은 CP를 발행한 LIG 그룹의 사기판매는 인정했지만 판매사인 우리투자증권의 사기판매 혐의는 법정관리 신청사실을 예측하기 어려웠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양의 경우 발행한 동양그룹 계열사뿐 아니라 사문서 위조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불완전판매가 조직적으로 자행된 정황이 많이 발견된 판매사 동양증권도 사기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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