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인천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 옆 송월동 주택가. 동네 어귀에는 '동화마을' 아치 간판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자유공원 아래 언덕길 주변 주택은 이미 알록달록 색이 입혀져 있다. 곳곳에 풍차, 시계탑 등 조형물과 화단, 벤치도 설치돼 놀이공원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마을은 그다지 동화적이지 않다. 구청이 주민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마을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4월부터 인천시 지원을 받아 송월동에서 저층주거지 관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노후한 담장과 외벽에 벽화를 그려 넣고 도로를 정비하는 수준이었으나 올 6월 '오즈의 마법사'등 동화를 주제로 한 벽화마을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카페, 동화체험관 등 마을기업 육성사업까지 더해졌다.
사업 개념이 달라졌지만 학계, 예술계 등에 의견을 묻는 일은 없었다. 공공시설을 관리하는 중구시설관리공단이 사업을 맡았고, 벽화는 미술학원 원장, 미대생이 일당을 받아 그렸다.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한 신축 빌라, 골목 깊숙이 자리한 낡은 집들은 건너 뛰었다.
지금까지 4억원이 투입됐고, 12월 1단계(약 120가구) 완공까지 2억원이 더 들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57곳에서 추진한 마을미술프로젝트 1곳당 사업비 5,000만~1억5,000만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결국 일부 주민들과 지역미술계는 동화마을 사업이 주변 차이나타운, 개항장 거리, 근대문학관 등 지역정서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 곳에서 35년간 거주한 김모(55)씨는 "어떤 취지로, 어떻게 조성되는지 제대로 된 설명 한 번 없었다"며 "주민들은 페인트 살 돈도 없는데 몇 년 후 색이 바래면 동네가 더 엉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구는 동화마을을 단계별로 확대하고 차이나타운을 이곳까지 넓혀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 또한 반대하는 주민들이 만만찮다. 주민 강모(65)씨는 "주말이면 차이나타운 관광객이 몰려와 동네가 차 댈 데도 없고 쓰레기로 넘쳐난다"고 불평했다.
편법과 예산전용도 이뤄졌다. 벽화가 조잡하단 이유로 뜯기고 다시 제작되는가 하면 캐릭터 저작권 문제로 시설물을 철거하는 일이 반복됐다. 구의회 의결 없이 예산을 우선 투입했다가 몇 달 뒤 인천시 돈을 받아 메우기도 했다.
중구의 한 관계자는 "벽화 예산을 지붕 보수나 무너진 담장을 세우는 등의 목적 외로 쓴 적이 있다"며 "불법이지만 주민과 사업 추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후 관리도 문제다.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철원 월하리마을, 안동 신세동 마을 등 문체부가 2009~2012년 조성한 마을벽화들이 자치단체의 비용 부담 난색 표명으로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소수 주민들을 제외한 대다수 주민들이 동화마을 조성을 반기고 있다"며 "최근 주민설명회를 열었고 학계, 미술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도 꾸려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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