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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0월 24일] 신뢰 프로세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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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0월 24일] 신뢰 프로세스 만들기

입력
2013.10.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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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상봉행사가 무산된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북한은 남측 최고지도자인 박근혜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의 국정원장도 김정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와 관련한 소문을 국회정보위원회에서 확인하는 발언을 했다. 이와 같이 최근의 남북관계는 정상적인 국가관계에서 금기시돼온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험담이 공공연히 오갈 정도로 다시 경색되고 있다. 북한은 심지어 박정희 시대의 유산을 들먹이며 '유신의 길, 독재의 길'이란 표현까지 써가면서 대남 비난공세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지금의 남북관계를 '대화있는 대결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남측이 그들의 존엄과 체제를 거론하면서 '맞춤형 억제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지금의 시기를 대화있는 대결시대로 규정하고 대남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화있는 대결시대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시대 남북관계를 규정할 때 사용했던 말이다. 미·중 데탕트가 이뤄지면서 남과 북도 '대화없는 대결시대'를 청산하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남측은 대통령의 종신제를 보장한 유신체제로 들어갔고, 북측은 주석제 헌법을 채택하고 유일체제를 강화했다. 이때 나온 말이 남북 간 '적대적 의존관계(공생관계)'이다. 서로 상대의 위협을 강조하고 내부 권력을 강화하면서 장기 집권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적대적 의존관계는 극복해야 할 유산이다. 하지만 남북적대관계를 대내정치에 활용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3대 세습으로 권력을 잡은 김정은 체제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남북대결의식을 고취하면서 내부 단합을 모색하려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북한문제는 한국정치의 중심에 있다. 이른바 '종북 프레임'은 보수세력들이 진보세력을 공격하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다. 지난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정치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북방한계선(NLL) 논쟁, 국정원 댓글 파동, 정상회담 대화록 문제 등 주요현안 모두 북한과 관련한 문제이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도 대북정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문제가 국내정치와 밀접한 영향관계를 맺고 있어 정치권은 북한문제를 국내정치에 활용할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을 전후해서 대화공세, 평화공세를 펴던 북한이 현재의 남북관계를 대화있는 대결시대라고 규정하고 '체제통일'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것은 우리 정부의 신뢰프로세스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내부 총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하려면 말 그대로 상호 신뢰를 쌓아야 하고, 신뢰를 쌓기 위한 프로세스, 즉 과정이 있어야 한다. 우선 남과 북이 초보적인 신뢰를 쌓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삼가야 한다. 특히 상대방 최고지도자와 체제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이제 신뢰를 쌓는 과정으로서의 남북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NLL과 관련한 문제 제기를 하면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을 어떻게 만들고, 남북철도를 연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유라시아 철도(실크로드 익스프레스)를 연결할 것이며, 북한 핵동결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북한 핵을 폐기할 것인지? 정책의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을 얻고자 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과 같은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북한의 선의에 기대는 신뢰 프로세스는 성공하기 어렵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신뢰를 쌓는 노력을 하면서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신뢰 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는 프로세스,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 구체화돼야 한다. 신뢰를 쌓는 노력을 등한시 하면서 '킬 체인'과 맞춤형 억제전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할 경우 많은 비용과 고통, 그리고 희생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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