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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0월 24일] 보일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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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0월 24일] 보일러실

입력
2013.10.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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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실의 물을 보충하기 위해 보름에 한 번 정도 보일러실에 들어간다. 음습한 지하의 보일러실에는 귀뚜라미가 사는데, 가끔씩 얘기치 않은 생명체와 조우할 때도 있다. 대략 2년 전쯤 나는 보일러실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있는 무척 크고 살이 찐 도둑고양이를 발견하고는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적이 있었다. 다음날 다시 가보았을 때에는 흐릿한 핏자국만 있을 뿐, 어미 고양이도 새끼 고양이도 보이지 않았다. 어미 고양이는 아기고양이를 낳기 위해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나와 마주쳤을 때, 새끼를 낳던 어미 고양이가 느꼈을 모독의 정도를 그제서야 가늠해보았다. 그 고양이는 얼마나 비루하고 슬펐을까. 나는 그 이후부터는 보일러실의 문단속을 좀더 꼼꼼하게 하고 있는데, 그것은 조금도 의도하지 않은 어느 찰나에, 그러니까 내가 내 마음을 조금도 닦아내지 못한 어느 순간에 마주칠 수 있는 슬픔 따위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심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비심은 슬픔을 부른다고 나는 믿고 있다. 보일러실은 이맘때는 귀뚜라미들 차지다. 그것들은 지상에 사는 새우들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통통 튀어 오르곤 한다. 며칠 전 보일러실에 들어갔을 때 귀뚜라미 떼는 벽에 달라붙어 숨을 죽이며 자신의 다리에 지방과 단백질을 축적하며 튀어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소설가 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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