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랑이 정답인가. 폴 매카트니(71)가 사랑에 빠지더니 음악도 젊어졌다. 50년 넘게 음악을 해온 그에게 새로운 것이 남아 있을까 회의적인 사람도 많겠지만, 그의 새 앨범 제목은 역설적으로 '뉴(New)'다. 앨범을 들어본 사람들은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나쁘진 않지만 더 잘 만들 수 있었던 앨범"(영국 일간 가디언)이라는 게 평가 중에서 최악일 정도다.
매카트니가 어린 시절 즐겨 듣던 재즈 스탠더드를 재해석해 불렀던 '키시스 온 더 바텀'(2012)을 제외하면 '뉴'는 2007년작 '메모리 올모스트 풀' 이후 6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그 사이 그에겐 큰 변화가 있었다. 2년 전 세 번째 아내를 맞은 것이다. 미국 뉴욕 운송회사의 상속녀인 낸시 슈벨과 결혼한 그는 '키시스 온 더 바텀'에 '마이 발렌타인'이라는 노래로 넘치는 애정을 표현한 적이 있다.
매카트니는 최근 인터뷰에서 "새 여자가 생기면 새로운 노래가 나온다"고 했다. '뉴'가 가정의 행복을 자양분 삼아 만든 앨범이란 뜻이다. "제 삶에 새로운 사랑이 생겼어요. 아침에 일어나 딸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와서 곡을 쓴 후 아내에게 전화로 '새 노래 들어볼래' 하곤 했죠. 결국 모든 곡의 영감은 아내에게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 앨범에는 노장의 생기 넘치는 열정이 농축돼 있다. 21세기의 매카트니와 1970년대 초의 매카트니가 만난 듯 복고적이면서도 현대적 사운드가 12곡을 연결한다. 4명의 젊은 프로듀서가 그를 도왔다. 총 지휘는 비틀스의 영광을 이끈 유명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아들 자일스 마틴이 맡았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프로듀서인 마크 론슨, 이든 존스(비틀스의 '렛 잇 비' 앨범 제작에 잠시 참여했던 유명 프로듀서 글린 존스의 아들), 폴 웹워스가 가세해 앨범을 완성했다. 매카트니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프로듀서와 작업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업템포의 로큰롤 '세이브 어스'를 시작으로 비틀스의 '굿데이 션사인'을 연상시키는 타이틀 트랙 '뉴', 후기 비틀스의 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퀴니 아이', '온 마이 웨이 투 워크' 등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곡이 주를 이룬다. "제가 신경 쓰는 부분은 과거의 작업을 답습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곡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옛날 노래와 비슷하게 만드는 걸 깨닫고 작업을 멈추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제 음악을 새로운 것으로 받아줄 수 있다면 좋지만, 불가능한 일이니 불평할 건 아니죠."
매카트니는 여전히 비틀스의 추억을 즐겁게 곱씹고 있다. '얼리 데이스'에서 그는 비틀스 초기 시절 존 레넌과 보냈던 즐거웠던 시간들을 찰랑거리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 위에 펼쳐 놓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차려 입고 / 기타를 등에 맨 채 / 우리는 길을 걸었지 / 우리 음악을 들어줄 누군가를 찾으며' '그때 거기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돼'라고 존 레넌과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벗기 위해 일침을 가한다.
매카트니는 결국 모든 작곡가의 노래는 그만의 과거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나 미래에 대한 곡을 쓴다고 해도 항상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건 제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과거를 회상하고 여행하는 사치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그 때를 회상하면 다시 존과 함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이런 회상이 제겐 큰 기쁨입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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