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방해가 단순한 방어권 행사를 넘어 형법상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정도로 위법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은 직원의 트위터 계정이 맞는데도 "아니다"고 허위로 통보하고 피의자 신원 확인도 해주지 않는가 하면 남 원장은 체포된 직원들에게 "진술하지 말라"고 종용했다.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은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은 자기들이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저희가 직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을 추정해서 지난 여름에 국정원에 보내준 것도 자기네 직원이 아니라고 했다가 이번에야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동안 수사에서 겪은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는 국정원 직원들이 외부조력자의 신원정보 등을 빌려 쓰는 데다 인사기록 카드를 볼 수도 없어 휴대폰 등 추적을 통해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임을 '추정'해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단 체포해 봐야 국정원 직원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고, 체포하면 바로 국정원 연락관이 연락오기 때문에 그때야 확인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국정원 측의 수사 방해는 직원 체포 이후에도 집요하게 이어졌다. 윤 전 팀장은 "남 원장이 '사람을 시켜서 조직적으로 진술하지 말라는 공문 보낼 테니 직원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사실을 아느냐"는 민주당 박범계 의원의 질문에 "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그건 범죄 행위(직권남용)가 될 수도 있는 건데 어떻게 전달하냐"며 "하려면 변호인을 오라고 해서 변호인 보고 전달하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남 원장은 '국정원 직원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국정원직원법 제17조(비밀의 엄수)를 근거로 직원들에게 검찰 수사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의원은 "국정원직원법의 취지는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국정원 고유 업무에 대한 비밀을 지키라는 것"이라며 "불법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은 본인이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피의자의 상관인 남 원장이 직위를 이용해 통일된 공문 형태로 (직원들에게) 진술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남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수서경찰서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못하게 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최근 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그러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이후 정권과 교감한 법무부가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현재 검찰 상황으로 볼 때 남 원장의 위법 행위에 대해 수사가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남 원장은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 수사를 개시할 때 '지체 없이' 통보하도록 한 국정원직원법 조항을 위반했다며 검찰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윤 전 팀장은 "체포할 때야 국정원 직원으로 확인됐고 연락관을 통해 바로 통보했다"고 반박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당 조항은 정보기관이 사실상 권력의 정점에서 모든 걸 좌지우지하던 군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것인데 민주화 시대에 정보기관원을 과보호하고 특권을 부여하는 이런 법은 맞지 않는다"며 "더구나 형사소송법을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강행 규정이 아닌 훈시 규정일 뿐이어서 경직되게 해석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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