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영화다. 장면 하나하나 펄펄 끓는다. 부나비처럼 인기를 좇아 날아들다 결국 날개가 꺾이는 한 청춘의 명멸은 그리 유별난 이야기는 아닌데 이 영화 속에선 특별하다. 지리멸렬한 영화 현장의 현실을 볼 수 있고, 연예계의 어두운 작동원리를 엿볼 수도 있다.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신연식('페어러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배우는 배우다'(24일 개봉)는 충무로의 저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맛깔지고 함축적인 대사와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연출, 패기 넘치는 젊은 배우의 묵직한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보는 재미를 돋아낸다.
이준은 이 뜨겁고 매력적인 영화의 한 축을 맡는다.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또라이'에서 영화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가 금세 소멸하는 젊은 배우 오영이 그의 몸을 입었다. 아이돌 그룹 엠블랙 활동과 예능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를 21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만났다. 젊은 몸 하나로 세상에 맞서는 거친 남자 오영의 강렬한 이미지를 탈색시키고 싶어서일까. 이준은 뿔테안경을 쓰고 스웨터를 입은 단정한 차림이었다.
오영은 아이돌 그룹 멤버라면 망설일 역할이다. 욕설을 마다 않고 옷을 모두 벗어 던지는, 수위 높은 침실장면도 여러 차례 선보인다. 게다가 '배우는 배우다'는 순제작비 9억원의 저예산영화다. 이준은 "노출 수위는 그다지 걱정을 안 했다. 내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일까가 가장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김기덕 감독이 작업하자면 누구나 단칼에 OK라 답할 것"이라고도 했다. 오영은 폭력배와 결탁한 닳고닳은 매니저 덕분에 단역에서 주연으로 신분 급상승을 이룬다. 이후 그는 유명세에 취해 연기에 대한 초심마저 잃는다. 이준은 "솔직히 그런 급격한 변화에 공감하지 못했다. 제 성격과는 너무 달라 억지로 이해하며 오영을 받아들이려 했다"고 말했다.
이준은 "돈보다는 표현에 대한 갈망이 많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예술 쪽에 오래 있어서 아마 그럴 것"이라는, 아이돌 그룹 출신답지 않은 분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때 예술고를 가기 위해 무용을 공부했고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1년 동안 무용을 전공했다"고 밝혔다. 당초 "예술고 무용학과에 진학한 뒤 연기학과 쪽으로 전과하기 위해" 택한 고육책이었으나 무용은 그에게 "말이 아닌 몸으로도 연기할 수 있도록 한" 인생의 자양분이 됐다. 이준은 "무용 쪽에 재능이 많아 계속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결국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연기를 하기 위해 대학을 자퇴했다"고 말했다.
자퇴 뒤 이준은 가수 겸 배우인 비(정지훈)가 설립한 제이튠스엔터테인먼트의 문을 두드렸으나 연기의 문은 쉬 열리지 않았다. "지훈 형이 배우대신 먼저 가수를 해보라 권해 (엠블랙 활동을) 시작했는데 새로운 재미를 찾았"고 "춤과 표정 짓는 법 등을 덕분에 많이 배웠다." 할리우드 영화 '닌자어쌔신'에서 비의 10대 모습으로 출연하고 TV드라마 '아이리스2'에 특수요원으로 등장했으나 그는 화면의 중심은 아니었다. 돌고 돌아 조금은 늦게 '배우는 배우다'로 스크린 중앙을 차지해서일까. 그는 "개인적 사정에 구애 받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가늘고 길게 꾸준히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배우 이력이 짧아 그런지 이번 영화 속 제 연기를 제가 평가할 수가 없어요. 주변 사람들은 욕할 수 없으니 기자들의 평을 참고하고 있어요. 예상보다 반응이 좋은 듯해서 저도 만족합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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