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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23일] KBS는 왜 폼이 안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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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23일] KBS는 왜 폼이 안날까

입력
2013.10.2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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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가을 개편에서 '클래식 오디세이'를 폐지했다. 지상파 TV에 하나뿐이던 클래식음악 전문 프로그램이 등장한 지 13년 만에 사라진 거다. 대신 KBS교향악단 연주 실황을 내보내고, 기존 프로그램인 '문화 책갈피'의 클래식음악 코너 '청바지를 입은 클래식'을 강화하겠다는데, 서운하다. 이미 봄 개편 때 폐지 논의가 있었다가 안팎의 반대로 없애지는 못하고 수요일 심야에서 오전으로 옮겨 방송하던 것이 영 막을 내렸다. 1% 전후의 낮은 시청률이 불운의 원인으로 보인다. 인기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평은 좋았는데,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겠다.

'클래식 오디세이'의 부고를 듣기 이틀 전인 이달 8일, 영국 국영방송 BBC는 KBS와는 매우 대조적인 미래 전략을 발표했다. 토니 홀 BBC 사장이 밝힌 계획의 핵심은 모바일 기반의 콘텐츠 서비스 강화, 그리고 예술 프로그램 강화다. BBC 기자 출신으로 보도본부장을 지냈고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이사장을 지낸 그는 올해 3월 취임 당시 BBC를 세계 최고의 예술ㆍ음악 방송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발표는 이를 구체화한 것으로, 예술 프로그램 예산을 20% 증액하고 영국 전역의 예술기관과 협력해 기념비적인 예술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선보이겠다는 게 요지다.

BBC1과 BBC2를 중심으로 선보일 새 프로그램에는 국립극장, 테이트, 대영박물관, 맨체스터 페스티벌 등 여러 예술기관과 제휴해 영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각종 공연과 전시, 예술 행사를 생중계하는 'BBC 아츠 앳(BBc Arts at…)', 아마추어 작가들을 대상으로 영국 미술의 숨은 영웅을 소개하는 '빅 픽처(Big Picture)', 초상화로 본 영국사 시리즈 '영국의 얼굴'등 굵직굵직한 것들이 포진하고 있다. 영국예술위원회와 함께 해봤다가 반응이 신통치 않아 중단했던 온라인 기반의 디지털아트 프로젝트 '스페이스(Space)'도 미디어의 새 영역을 개척하는 차원에서 내년에 재개한다.

그는 "예술은 BBC의 심장이자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훨씬 더 야심 차게 다루길 원한다"며 "영국이 지닌 놀라운 재능을 더 많은 시청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BBC의 책임이자 영예"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방송사에 품격을 더해주는 근사한 말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서 영국 언론 기사를 뒤지다가 놀라운 통계를 발견했다. 토니 홀 사장은 BBC 4개 주요 TV 채널의 2012/2013년 예술ㆍ음악 프로그램 방송이 1,860시간에서 1,821시간으로 줄었다고 '반성'하며 관련 예산 20% 증액을 발표했다. 1,821시간을 1년 365일로 나누면 4.99시간이니까 매일 5시간은 방송을 한 셈인데, 이게 적다고? TV 예술 프로그램이 멸종하다시피 한 한국과는 정말이지 딴 세상이다.

BBC의 이번 발표는 지난해 가을 간판 앵커의 성범죄와 정치인의 성 추문 오보로 추락한 위상을 회복하고 2022년 BBC 창사 100주년을 준비하는 장기 계획으로 나왔다. BBC를 뒤흔든 이 두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임 엔트위슬 사장에 이어 BBC를 이끌게 된 토니 홀은 BBC의 자랑스런 전통과 품격을 되찾고 미래를 기약할 동력을 예술 프로그램 강화에서 찾았다.

KBS는 왜 BBC처럼 못하느냐고 투덜대려는 게 아니다. 두 방송사는 인력이나 예산에서 워낙 차이가 나서 나란히 비교하기란 무리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방송사가 멀리 내다보는 철학이나 전략은 고사하고 예술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누추함이다. 예술은 사치품이 아니라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재다. 지상파도 공공재다. 공영방송 KBS는 공공재를 바르게 쓰고 다뤄야 한다.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들은 그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시청률이 낮다고 예술 프로그램을 찬밥 대접할 게 아니라 멋지게 만들어서 방송할 방도를 궁리해야 마땅할 것이다.

오미환 문화부장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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