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편 검정 통과한 교과서에 오류 많다는 것을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전문가들과 함께 한달여간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을 통과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을 재검토한 교육부는 21일 교학사 교과서가 수준 미달의 오류투성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수정ㆍ보완 권고를 받은 곳이 251건으로 가장 적은 미래엔(62건)의 4배를 넘는다. 의도적인 봐주기가 아니서고는 같은 검정위원의 심사를 받았다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하는 비판 여론에 밀려 시작된 교과서 수정 검토에는 다른 교과서까지 모두 포함돼 애초부터 '물타기'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날 공개된 수정ㆍ보완 권고 중 교학사 외 교과서에 대한 내용은 주로 북한 관련 서술이다. 교학사 이외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비난해온 일부의 주장을 고스란히 수용한 모양새로 교육부의 재검토 과정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근대화론ㆍ이승만 찬양 '공인'
교육부는 이날 발표를 통해 교학사 교과서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서술로 오해할 소지'가 있고 '이승만의 활동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한 편향된 교과서라는 점을 공인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은 한국인에게 점차 수용되어 갔다'는 서술에 대해서는 '일제가 시간관념을 강요하고 교통ㆍ통신을 발달시킨 목적 등 식민수탈 배경에 대한 서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30년대 명동 거리 사진을 보여주며 '오늘날 우리 도시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한 대목에 대해서도 '명동과 달리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북촌의 조선인들은 매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음에 유의'해 '당시 조선인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균형적인 자료 제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5단원 전체에 걸쳐 '이승만 관련 자료가 다른 독립운동가와 비교하여 많은 분량을 차지하여 균형 잡힌 구성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제주 4ㆍ3사건을 남로당 봉기처럼 서술한 대목도 당시 '3ㆍ1절 기념대회 발포 사건을 계기로 격화되었고 전개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것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낸 4ㆍ19 혁명의 의미를 소홀하게 다뤘다거나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사태의 원인이 시위대에 있는 것처럼 서술한 부분도 수정 권고를 받았다.
교학사 교과서는 다른 7종 교과서들에 비해 이처럼 편향적인 내용에 대한 지적이 유난히 많았다. 하지만 대표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은 지난 달 기자회견까지 열어 식민지근대화론도, 이승만 찬양도 아니라고 주장하며 "날짜, 연대 등 사실 오류는 수정하겠지만 시각은 절대 바꿀 수 없다"고 공언한 상태여서 대응이 주목된다.
교학사 수정ㆍ보완 "시늉만" 지적도
교육부의 재검토 결과는 교학사 교과서에 그동안 쏟아진 비판을 일부 수용하긴 했지만 시늉에 그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4ㆍ3사건은 적절히 수정해야 한다, 이승만 내용이 많다 등 추상적으로 적절히 고치라는 지적에 그쳤다"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5단원 전체 68쪽에서 11쪽에 걸쳐 이승만 얘기가 나오며 이승만의 이름이 42차례, 사진은 5장이나 실려 있으면서 임시정부 마지막 주석인 김구 사진은 1장, 윤봉길 의사의 사진은 없다는 비판을 그동안 수도 없이 받아왔다.
게다가 이미 학계가 지적한 사실 오류가 이번 교육부 재검토 결과에 반영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교학사 교과서에는 '향도' 설명이 분명하게 두 군데나 틀리게 나온다고 지적했는데도 그런 부분을 다른 교과서들의 모호한 설명과 묶어서 고치라고 지적한다든지, 이규보가 향리 출신이 아닌 점도 이번 수정ㆍ보완 목록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7종 '좌편향' 이미지 덧씌우기
교학사에 대한 부실 수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머지 7종 교과서들에 대해 주로 '좌편향'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보완 권고가 나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천재교육 교과서에 대해 교육부는 '대한민국과 북한 정부의 수립'이라는 제목을 문제 삼아 '남북한을 동격으로 서술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그 정도 제목 달기는 집필자의 재량권 내에서 해결할 부분이지 집필기준으로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상교육 교과서는 '북한 주민의 인권 관련 서술 누락'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교육부가 지목한 그 교과서의 388쪽에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북한 이탈 주민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서술이 나온다. 이날 교육부의 설명회 자리에서는 "인육을, 쥐를 잡아먹고 있다고 써야 북한 인권 서술이 포함됐다고 보는 거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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