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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같지 않은 강심장 유희관… "저, A형이 아닌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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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같지 않은 강심장 유희관… "저, A형이 아닌가 봐요"

입력
2013.10.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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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한다. 신인 투수가 처음 잠실 구장에 서면 100m 밖에 떨어져 있는 지하철 역의 진동 소리마저 들린다고. 한 번 뛰기 시작한 심장이 멈추지 않아 마운드 밑으로 지하철이 다닌다는 착각이 든다고 했다. 그 경기가 '잠실 라이벌'전이라면 떨림의 강도는 더 세다. 그 무대가 포스트시즌이라면 포수 미트 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미국산 괴물'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도 세인트루이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에서 과도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4이닝 7실점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유희관(27ㆍ두산)은 달랐다. 큰 경기에 오히려 더 씩씩하게 공을 던지는 두둑한 배짱을 보였다.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자신 있게 뿌리는 직구와 싱커는 난공불락이었다. 지난 2009년 중앙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 한 유희관은 올해가 풀타임 첫 시즌이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준PO), LG와의 플레이오프(PO) 등 '가을 야구' 경험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마운드에 선 유희관은 전혀 신인 투수 같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오래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절묘한 볼배합의 변화, 가을 스타를 만들다.

유희관은 올 정규시즌에서 41경기(선발 18경기)에 등판해 10승7패, 3.5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두산의 왼손 투수로는 윤석환 전 투수 코치 이후 25년 만에 두 자릿수 승수에 성공했다. 직구 최고 시속은 130㎞ 중반 대에 불과하지만 묵직한 볼끝,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예리하게 휘는 싱커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포스트시즌 성적은 이를 뛰어 넘었다. 9일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7.1이닝 3안타 1실점, 14일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7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한 피칭을 보였다. 유희관은 20일 열린 LG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도 7이닝 6안타 1실점으로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다.

유희관은 21일 "준PO 2차전에서는 직구 위주의 볼배합을 했다. 준PO 5차전에선 직구와 변화구를 거의 1대 1로 구사했다"며 "경기 전 포수 최재훈과 많은 얘기를 한다.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 지 철저히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와의 PO에서도 볼배합을 역으로 가져갔다. 1회에만 모두 직구만 던지는 등 정규시즌과 180도 다르게 던지는 게 1차 목표였다"면서 "내 공에 대한 자신감은 언제든 있다. 잘 맞는다고 다 안타가 되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10개 중 8개는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어"

유희관이 갖고 있는 자신감의 원천은 역시 제구력이다. 포수가 처음 미트를 갖다 댄 곳에 정확히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유희관은 "만약 10개를 던진다면 8개는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다. 모든 구종을 스트라이크로 집어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며 "부모님이 좋은 몸을 주셔서 어깨가 아프거나 체력적으로 힘든 건 없다. 3~4회 132㎞ 나오던 직구도 7~8회 가면 135㎞까지 나온다"고 웃었다.

김진욱 두산 감독은 평소 "같은 구종으로 같은 코스에 2번 연속 던질 수 있어야 좋은 제구력을 갖춘 투수"라고 정의해왔다. 바깥쪽, 몸쪽을 가리지 않고 포수가 움직이지 않고 받게 한다면 최고의 투수가 될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희관은 이 같은 조건을 상당 부분 충족하고 있다. LG와의 PO 4차전에선 의욕이 앞선 나머지 상체가 앞으로 쏠리면서 공이 조금 높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이내 자기 공을 뿌릴 수 있었다.

유희관은 "조금 흥분했던 게 사실이다. 공을 눈앞에서 때리지 못하고, 팔이 뒤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하지만 내 뒤에 메이저리그급 수비를 펼치는 야수들이 있고 잠실 구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구장이라는 생각으로 평정심을 찾았다"고 말했다.

"A형인데, 잘못된 것 같아요"

야구인들은 유희관의 포스트시즌 3경기를 지켜보면서 "모처럼 좋은 왼손 투수가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LG의 외국인 투수 리즈처럼 위력적인 구위로 윽박지르는 유형은 아니었지만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으로 또 다른 '보는 맛'을 느끼게 해줬다. 좀처럼 떨지 않는 강심장도 화제였다. 유희관은 "나도 솔직히 떨릴 줄 알았다. 하지만 넥센전뿐만 아니라 LG전도 아무렇지 않더라"고 웃었다.

유희관의 혈액형은 A형이다. 항간에 떠도는 혈액형 분석표대로라면 전형적으로 소심한 남자다. 하지만 유희관은 이 같은 평가에 손사래를 친다. 그는 "지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던진다. 많은 팬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떨리기 보다는 오히려 흥이 난다"며 "아무래도 혈액형 검사를 다시 해봐야 할 것 같은데 AB형으로 판명될 것 같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유희관은 한국시리즈에서도 할 일이 많다. 현재 팀 내에서 가장 믿을 만한 선발 투수로 급부상한 데 이어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다. 삼성은 올 시즌 유희관이 가장 강했던 상대이기도 하다. 5경기에 선발 등판해 2승1패, 1.91의 평균자책점을 거뒀다.

유희관은 "삼성 타자들은 크게 돌리는 스타일이다. 한 방 능력을 갖췄지만 컨택트 위주의 LG 타자들 보다는 덜 까다로운 것 같다"며 "넥센과 LG를 연거푸 제압하면서 느낌도 좋고 팀 분위기도 좋다. 지금 이 좋은 감정을 끝까지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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