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5일 오전10시 서울 천호2동 주민센터. 50대 남성이 농약이 든 것으로 보이는 병을 들고 "자살하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이미 농약을 몇 모금 마셨는지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긴급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동경찰서 천호지구대 서병호(36) 경장은 친구 대하듯 남성을 다뤘다. 서 경장은 불과 몇 분 만에 이 남성을 설득, 구급차에 태웠다. 이미 두 차례 자살 시도와 음주 소란으로 지구대를 드나들었던 이 남성과 꾸준히 연락을 취해온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서 경장은 이 남성이 서울 은평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고, 강동구의 노숙자 재활센터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매달 한 번 꼴로 찾아갔다. 둘 사이의 신뢰가 싹트자 남성은 시설의 상담사에게도 털어 놓지 않던 개인사를 서 경장에게 줄줄 털어놓았다. 서 경장은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마음을 열어줘 기뻤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2년간의 천호대교 밑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서 경장의 도움으로 최근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됐다.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일자리도 알아보고 있다.
천호지구대에 근무하는 서 경장은 이 남성 같은 자살 시도자들을 매주 4, 5명씩 마주한다. 처음에는 서 경장도 그들을 설득해 집에 돌려보내는 등 상황 수습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돌아갔던 사람들이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보고 자살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상습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고민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려 노력하는 '진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경장은 다음달이면 그토록 고대하던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갖게 된다. 자격증을 준비한 지 19개월 만이다. 평일 비번 때는 하루 5시간, 휴일에는 하루 8시간씩 강동구 정신보건센터에서 120시간에 달하는 필수 실습시간을 채웠다. 서 경장은 "많이 피곤했지만 지구대 순찰팀장 이하 동료들의 배려 덕에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굳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사람을 살리는 게 경찰이라고 항상 믿고 있고, 그런 경찰이 되기 위해서"라며 웃었다. 사건처리 실적에만 열중하는 것은 경찰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진심으로 돕고 싶다는 마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게 실적보다 중요하지 않을까요."
글ㆍ사진=김관진기자 spiri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