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 본사를 둔 글로벌 로펌 커빙턴앤벌링은 유럽연합(EU)의 심장부인 벨기에 브뤼셀 지점에 최근 로비팀을 꾸렸다. 셰브론, 스타토일 등 대형 에너지 회사들의 의뢰로, 환경오염 논란이 일고 있는 이들 회사의 천연가스 추출 방식(수압파쇄법)을 EU가 허용하도록 하는 것이 임무다. 벨기에 고위 외교관 출신으로 1997년부터 EU에서 근무하며 벨기에 상주대표부 대사,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외교정책자문관을 역임한 팀장 장 드 뤼트는 몇 달 만에 최소 4명의 EU 고위 관료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중 에너지정책 담당 최고위 관료는 수압파쇄 관련 미공개 법안을 통째로 들고 왔다.
뉴욕타임스(NYT)가 19일(현지시간) EU를 상대로 한 미국 로펌들의 치열한 로비 활동을 전했다. 특히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블록 EU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행하면서, 차제에 자사에 유리하게 협정이 체결되도록 손쓰려는 미국 기업들의 노력이 로비전에 불을 붙이고 있다.
로펌들은 EU 기구들이 모여있는 브뤼셀 벨리아르 거리에 사무실을 내려고 경쟁하는 한편, EU 3대 기구인 집행위원회, 유럽의회, 정상회의의 정치인이나 관료를 로비스트로 영입하거나 우군으로 포섭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NYT는 "유럽에서 로비 대상 기관 출신의 내부자를 로비스트로 고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미국계 로펌들이 로비 제도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유럽 정치 문화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U 고위 관료들과 줄을 대는데 성공한 로펌에는 시간당 1,000달러(106만원)에 달하는 비싼 자문료에도 기업들의 문의가 쇄도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FTA 협상을 통해 어떤 공통의 규제제도를 마련하느냐에 따라 수십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성과도 잇따르고 있다. 커빙턴앤벌링은 인터넷 기업들이 수집한 개인정보의 사용처를 제약하려던 EU의 방침을 완화하는데 성공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애플, 어도비 등 미국계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로비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미국계 로펌 호건로벨스는 미국 반도체 제조사와 화학기업의 의뢰를 받아 이들 기업이 EU의 제품 안전기준 강화 규정을 적용받지 않도록 손을 썼다.
브뤼셀의 미국 로펌들은 고객 비밀엄수 원칙을 들어 로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로비스트 등록은 물론이고 의뢰인, 로비 대상 신고를 의무화한 미국과 달리 이를 자율에 맡기는 유럽의 느슨한 제도에 편승한 것이다. 마로스 세프 코빅 EU 집행위원회 부의장은 "EU에 등록된 로비단체는 6,000여곳으로 실제 활동하는 단체의 75% 수준"이라며 "로펌이 가장 등록율이 저조하며 특히 미국계 로펌은 유럽에도 등록 절차와 신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척한다"고 비난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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