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감정만 잘 소화하는 배우라는 인상이 강한 듯해요. 제 이미지가 너무 정형화 돼 있는 듯도 하고요. 이번 영화로 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보고 싶었어요."
김민정(32)은 아마 또래 배우 중 가장 오래 연기를 한 배우일 것이다. 1989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한 자동차 TV광고로 연기의 세계에 뛰어든 뒤 24년이 지났다. 잠시 빛나다 금세 소멸하는 별들이 유난히 많은 여의도와 충무로에서 보기 드물게 오래 떠 있는 별인 셈. 그토록 오래 봐 온 스타인데도 그의 최신작 '밤의 여왕'을 보면 몇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대중이 몰랐던 장점들을 지녔구나', '많이 저평가된 배우이구나'…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상념들이 그의 얼굴 위에 겹쳤다.
지난 17일 개봉한 '밤의 여왕'은 김민정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순진무구하고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남편 영수(천정명)의 의심을 받는, 화려한 '과거'를 지닌 희주가 김민정의 역할이다. 아내의 '놀았던' 과거에 집착하는 영수의 지질한 행동은 공감대를 얻기 힘들고, 주변 인물들이 빚어내는 웃음도 선도가 낮은 편. 김민정은 그다지 특별하다 할 수 없는 이 영화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짙은 화장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클럽 무대 중앙을 차지한 채 춤을 추는 희주는 김민정의 기존 이미지를 뒤엎는데도 제법 설득력 있다. "울면서 춤 연습을 하고 걱정도 많이 하며 준비한" 연기 덕분인 듯.
'밤의 여왕'은 로맨틱코미디를 표방한 영화다. 김민정은 지난해 '가문의 영광 5: 가문의 귀환'에 이어 웃음으로 관객들에게 접근하려 한다. 그는 "'가문의 영광 5'로 나도 누군가를 웃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번 영화도 어느 장르로 제 자신을 국한시키고 싶지 않아 모험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에 질려 비명을 쏟을 듯한 커다란 눈동자인데도 "공포나 스릴러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런 장르의 시나리오는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읽지도 못한다"는 게 이유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스로를 "잡초 같은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현장에선 시장 아주머니 같이 억척스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 이 여배우는 그래도 가녀린 미녀 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싶진 않은 듯하다. "다음엔 깊고 진한 정서를 지닌 멜로에 도전하고 싶어요. 일본 영화 '러브 레터' 같은 작품도 좋고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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