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통지서를 뭐로 보낸다고?
지난 7월 31일 국방부가 예비군훈련 소집통지서를 이메일이나 등기우편 대신 '샵(#)메일'로 보내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뒤 인터넷 공간이 들끓기 시작했다. '샵메일이 뭐냐'는 질문서부터 '샵메일 몰라서 훈련 놓치면 누가 책임지냐'는 성토까지 이어졌다. 예비군 훈련 샵메일 통지는 강제가 아닌 선택사항. 하지만 '샵메일이 액티브엑스와 함께 한국의 IT 갈라파고스화를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재 진행형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큰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샵메일은 공인전자주소를 이용해 전자문서를 주고 받는 일종의 전자 등기우편이다. 사용자 본인확인, 송수신과 열람여부 확인, 내용 증명 등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유통 정보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보관된다. 늘어나는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을 보장한다는 점 등 샵메일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김경환 변호사는 "소송과정에서 이메일 증거가 늘어나고 있지만 위·변조 가능성이나 미수령 논란 등 기존 이메일은 법적 증거로 활용되는 데 문제가 있지만 샵메일은 공증이 된 전자문서이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있다"고 말했다. 공인인증서 사용을 강요한다는 세간의 비판과 달리 샵메일 가입시 본인 인증 방법으로 공인인증서, 휴대폰 인증, 대면 확인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고 플러그인도 최소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9월 사업계획 발표 직후부터 샵메일이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온 까닭은 우선 새 계정을 만드는 게 번거로운 데다 기존 이메일과 호환되지 않는 폐쇄적 서비스라는 점, 또 계정 유지비용이 든다는 점 때문이었다. 예컨대 정부는 샵메일 이용시 연간 13억원씩 드는 예비군통지서 발송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이용자는 기존 이메일 통지에 송수신 인증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훨씬 덜 번거롭고 비용도 덜 드는 방법이라고 반박한다. 샵메일 한 통을 보내는 덴 100원이 들고, 계정 등록 후 매년 비용을 내고 갱신해야 한다. 국가와 법인은 계정당 연 15만원, 사업자는 2만원, 개인은 1만원이다. 단 정부 및 금융기관의 공인전자주소 조회에 동의한 개인 계정은 등록·유지비가 무료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 공인전자주소팀 안대섭 팀장은 "개인이 공인전자 주소 조회에 동의하면 개인 정보가 모두 공개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공인전자주소 딱 하나만 공개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샵메일에 대한 네티즌의 가장 근원적인 반감은 정부가 1999년 공인인증서를 도입하던 당시처럼 시장 요구가 아닌 정부 주도하에 법과 표준을 제정해 관리하려 든다는 점이다. '샵메일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진흥원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서 인증기관을 지정하고 시범사업을 늘려나가는 양상이 '공인인증서 강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예비군 통지서 발송뿐 아니라 외교통상부도 샵메일 민원서류 발급을 시작했고 서울 서대문구도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지난 14일부터 부동산 중개업 민원 업무에 샵메일을 도입했다. 공공기관의 샵메일 도입이 확산되면 공공기관과 거래하는 법인들은 샵메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은 "샵메일 이용을 촉진하려면 공공기관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이용해 민간으로 시장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며 정책 지원안을 요구하기도 했다.
도입 1년이 지난 현재 샵메일에 등록된 공인전자주소는 1만 7,000 여개. 진흥원이 지난해 샵메일 설명회에서 발표한 올해 공인전자주소 등록 예상치 180만 개의 약 100분의 1 수준이다. 정부기관으로부터도 외면 받고 있다.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은 지난 달 말 기준으로 샵메일을 등록한 국가 기관은 45개에 불과하고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조차 샵메일을 등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진흥원이 밝힌'2017년 연간 1조원 시장'예측도 현재로선 가망이 없어 보인다. 한 인증기관 관계자는 "2017년까지 잘 해야 2,000억원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스토어도 공인인증서 도입하라
지난 8일 금융감독원은 전자금융감독규정을 들어 온라인 애플스토어의 국내 결제대행 업체인 KG이니시스에 '30만원 이상 결제시 반드시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현행 규정상 30만원 이상 전자금융 결제시 공인인증서 사용은 의무다. 하지만 한국 애플스토어와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스토어, 한국 어도비스토어, 코레일톡 등은 공인인증서 없이 결제를 해왔고, 이 같은 결제 방식은 공인인증서 무용론(無用論)의 강력한 근거사례로 거론돼 왔다.
어쨌건 KG이니시스는 10일부터 윈도우 기반 사용자가 한국 애플스토어에서 30만원 이상 결제시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도록 했다.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는 OS X나 iOS 운영체제의 경우 기술적 어려움이 있어 당분간 적용을 유예했다.
당연히 네티즌들의 성토가 빗발틈? 한 네티즌은 "맥(Mac) 유저가 온라인 애플스토어에서 맥 컴퓨터를 못 사는 황당한 상황이 오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당국의 뒤늦은 시정명령은, 전자금융감독규정의 타당성이나 국제 표준과는 별개로, 그간의 감독 소홀과 형평성 위배라는 비판도 받아야 했다. 금융감독원 송현 IT 감독국장은 "온라인 애플스토어의 규정위반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모든 거래를 다 알아야겠지만 부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거래도 있다"고 말했다.
애플스토어 공인인증서 의무화에 대한 저항의 바탕에도, 샵메일과 마찬가지로, 정부 주도ㆍ통제 방식에 대한 시장의 분노와 피로감이 깔려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되던 시절부터 전자상거래 시장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IT산업이 정부 주도의 '탑다운(top-down)'방식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전자상거래 시장도 1999년 전자서명법이 발효되면서 성장 전기를 맞이했다. 동시에 소수의 전자서명 인증기관들은 '공인인증기관'이란 이름으로 10년 넘게 시장을 독과점해왔다. 국내 공인인증기관은 금융결제원, 한국무역정보통신, 한국전자인증, 한국정보인증, 코스콤 5곳.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공인인증서에 '갈라파고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은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공인인증서 서식지'인 액티브엑스 환경 자체를 추방하자는 움직임이 대세인 '웹 표준'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IT 시장의 기술적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0년 공인인증서 사용규제 개선을 담은 '전자금융감독규정 개정안'을 마련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7월 공인인증서 발급 기관을 현행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비로소 연간 800억 규모의 공인인증서 독과점 시장이 경쟁체제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대신 샵메일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현재 공인전자주소 등록대행기관인 공인전자문서중계사업자는 모두 6곳. 이 가운데 기존 공인인증기관 세 곳(한국무역정보통신, 코스콤, 한국정보인증)이 포함돼 있다. 인터넷 규제 철폐 운동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오픈넷의 한창민 사무국장은 "공인인증서 사업자들이 정부를 내세워 자기네 밥벌이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요구는 뚜렷하다. 정부가 법과 표준을 만들어 획일적으로 시장을 규제할 게 아니라 기술적으로 필요한 기능만 지정하고 실제 서비스는 시장에 맡기라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의 경쟁 과정에 불공정 요소가 없는지 관리 감독 역할만 하라는 것이다.
용어 정리샵(#)메일
공인전자주소를 이용해 전자문서를 송수신하는 공인전자우편. 기존 이메일과 달리 사용자를 확인하고 송신 수신 열람여부 확인, 부인방지 및 송수신 내용을 증명하는 효력을 가진 서비스다. 2012년 지식경제부가 전자거래기본법을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으로 개정한 뒤 만든 샵메일은 대법원과 외교부가 처음 도입한 데 이어 국방부와 경찰청 등이 시범사업을 벌이는 등 정부 및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공인인증서
일종의 전자 신분증. 온라인에서 쇼핑, 금융거래 등을 할 때 본인임을 증명하는 데 필요하다. 대부분 액티브엑스를 설치해야 사용이 가능하다. 액티브엑스는 오래 전부터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공인인증서는 인증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액티브엑스(ActiveX)
동영상 등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콘텐츠를 웹 브라우저에서 구현하는데 이용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기술. 자바(JAVA)를 대체해 플래시 등이 사용된 다이내믹한 웹사이트를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자바와 달리 웹 브라우저를 통해 PC를 직접 조작해 속도는 빠르지만 보안에 취약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2009년 발표된 IE 8부터 액티브엑스 기능 지원을 축소, 액티브엑스에 대해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렸다.
플러그인(Plugin)
플러그인은 응용 프로그램을 확장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의 통칭. 가령 웹 브라우저에서는 플래시와 퀵타임과 같은 플러그인을 사용해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액티브엑스가 대표적인 플러그인이다. 구글 크롬의 경우 브라우저 자체가 플러그인을 지원한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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