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 최경주(43)는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도 안다. 한국인으론 처음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투어에 입성해 8승을 거둔 걸출한 실력 때문이지만, 섬 소년에서 세계 정상급 골프 선수가 되기까지의 입지전적인 삶은 그를 규정짓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국민골퍼'라는 닉네임도 그래서 붙여졌다.
최경주가 18일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초대석' 자리에 앉았다. 정ㆍ관계, 문화ㆍ예술계 인사들이 단골 손님이던 '관훈초대석'에 운동 선수가 초청 받은 건 처음이다. 관훈클럽 측은 "골프장 연습생으로 출발해 세계에 한국을 알린 대표적인 운동 선수가 됐고, 재단을 만들어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을 높이 샀다"고 설명했다.
최경주는 이날 1시간 30여분 동안 자신의 골프 인생과 철학을 특유의 입담으로 녹여냈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알리는데 기여하고 있는 스포츠 1위는 골프"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한국에선 골프가 후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정감사장에서 (공무원 등이)골프장에서 밥 먹은 게 이슈가 되더군요. 이래선 골프의 대중화는 요원합니다. 왜 골프를 정부 스스로 죽이려고 합니까? "
최경주는 "'내가 골프를 안 하니까 당신도 하지 말라'는 식의 인식으로는 골프가 발전할 수 없다"며 "골프가 사치스런 운동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선 정부와 골프 업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PGA 투어 경력 14년째인 베테랑 골퍼를 지탱해준 건 태극기였다고 했다. "PGA 투어를 뛰면서 캐디백에 태극기를 달았을 때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입니다. 자랑스럽기도 했고요.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 선수라는 책임감 때문이지요."
그는 골프의 기본인 그립을 예로 들면서 삶의 자세를 일갈했다. "그립은 골프의 출발입니다. 대충해선 안 되죠. 삶도 대충 살아선 성공할 수 없어요. 골프의 그립처럼 기본에 충실하고 열정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겁니다."
최경주의 올해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때 세계랭킹 5위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70위권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실망했을 법하지만, 오히려 "작년엔 101위였는데 30계단 올랐다"며 웃었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너무 높은 가치와 기준을 세워놓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의 기준을 낮출 필요도 있습니다."
골프 꿈나무를 육성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해 2007년 설립한 '최경주 재단'은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국민이 보내준 성원과 격려를 어떤 형태로든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재단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탱크'의 향후 계획은 구체적이었다. 당장은 내년 PGA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지만, 마음 속의 목표는 달랐다. "2015년 한국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미국과 세계연합팀 골프 대항전)에서 단장이 아닌 선수로 뛸 겁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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