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 10년 숙원인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이 내년에는 꼭 이뤄질까.
제94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가 18일 인천광역시 문학경기장에서 개막, 24일까지 1주일간 열전에 돌입했다. 인천 체전에는 전국 16개 시도를 대표하는 선수와 임원 3만여 명이 출전, 46개 종목에서 자기 고장의 명예를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인다.
이번 인천 체전에서는 바둑종목 경기도 열린다. 16개 시도 선수 300여명이 23, 24일 이틀간 인천 신흥초교 체육관에서 남녀 일반부, 혼성페어부, 학생부, 어린이부 등 5개 부문에서 여느 스포츠종목 못지않은 규모로 성대하게 대회를 치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대회서 선수들이 거둔 성적은 각 시도의 성적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바둑이 전국체전 정식종목이 아니라 번외경기라 할 수 있는 동호인종목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바둑이 전국체전에 참여한 지는 꽤 오래 됐다. 바둑은 전통적으로 문화 혹은 예도로 간주돼 오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기원이 중심이 돼 체육으로 전환을 추진, 2002년 대한체육회로부터 정가맹단체가 되기 위한 전 단계인 인정단체 승인을 받았다. 이어 2003년 전북 부안서 열린 제84회 전국체전에서 전시종목(후에 동호인종목으로 명칭 변경)으로 채택됐다. 인정단체 단계에서 전시종목으로 전국체전에 참여한 건 바둑이 최초의 사례였다.
이후 바둑의 체육화사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2005년 '체육으로서의 바둑'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대한바둑협회가 창립되고, 2006년 대한체육회 준가맹단체에 이어 2009년 정가맹단체 승인을 받아 드디어 자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스포츠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전국 16개 시도에 바둑협회가 속속 설립됐고 국무총리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를 비롯해 전국규모 아마바둑대회가 잇달아 개최됐다.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남자단체전, 여자단체전, 남녀페어 등 바둑종목에 걸린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해 한국이 4회 연속 종합 2위를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바둑이 어엿한 스포츠종목임을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확실히 인식시켰다.
또한 바둑과 함께 대표적인 두뇌스포츠인 체스, 브릿지가 이미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스포츠종목으로 인정받았고, 국제바둑연맹(IGF)이 국제경기단체총연맹(GAISF)에 정가맹단체로 승인받는 등 글로벌 마인드스포츠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상태다.
하지만 바둑계의 숙원인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올해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19개 동호인종목 가운데 바둑이 최장수 종목이다. 대부분의 동호인종목들이 보통 2~3년 만에 졸업하고 정식종목으로 진급하는 게 관례인데 반해 바둑은 벌써 11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정식종목과 동호인종목은 똑같이 체전 기간 중 같은 지역에서 개최되고, 경기 진행 방식이나 참가 선수 규모 등 외견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지만 내용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선 종합 성적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바둑종목에 금메달이 5개나 걸렸지만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각 시도 체육회에서도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말 그대로 바둑을 즐기는 동호인들의 '집안 잔치'로 끝나는 셈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바둑이 전국체전에서 오랜 '찬밥 신세'를 벗어나 당당히 '제 식구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올 초 허동수 한국기원 이사장이 대한바둑협회 회장을 겸임하면서부터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노력이 다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바둑계는 지난 10년간 전국체전에 동호인종목으로 참가해 선수 선발이나 관리, 대회 진행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스포츠종목 못지않게 훌륭하게 대회를 치러내 바둑이 어엿한 체육종목의 하나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바둑협회의 행정능력도 분명히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매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바둑대회가 100개 이상 개최되고 있어 바둑이 범국민적인 스포츠종목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상태다.
지난해까지 전국 16개 시도바둑협회 가운데 부산, 대구, 광주, 인천, 울산, 경기, 강원, 경남, 전남, 충북, 제주 등 11개 협회가 해당 시도체육회에 정가맹 승인을 받아 그동안 정식종목 채택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필수요건도 완전히 충족시켰다.
바둑의 정식종목 채택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입장이었던 체육계의 일반적인 인식도 요즘 크게 개선됐다. 최근 경북 구미서 열린 국무총리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개막식에는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이 내빈으로 참석해 축사를 했다. 대한체육회장이 바둑대회에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대회 참가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대한바둑협회는 '바둑을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해 달라'는 신청서를 이미 대한체육회에 제출, 다음 달 전국체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내년 1월 대한체육회 이사회서 최종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바둑계에서는 그동안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정식종목 채택에 필수적인 요건들을 대부분 충족시켰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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