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발표에 따르면 올 여름 들어 멕시코의 성인 비만인구 비율(32.8%)이 미국의 성인 비만인구 비율(31.8%)을 앞질렀다. 멕시코의 지난해 1인당 연간 탄산음료 소비량 또한 163ℓ로 118ℓ인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비정부기구인 미국 농업통상정책연구소(IATP)는 멕시코의 급속한 비만인구 증가와 탄산음료 소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비만은 몸무게를 키로 나눈 수치(kg/㎠)가 30%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남태평양의 사모아는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WHO 발표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사모아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55%)이 비만이다. 사모아 정부는 같은 해 비만의 원인 중 하나로 지방 함량이 70%가 넘는 칠면조 꼬리를 지목해 수입 금지했다. 2차대전 중 주둔하던 미군이 칠면조 요리과정에서 버린 꼬리가 국민들의 별미로 자리잡으며 비만인구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모아는 칠면조 꼬리 수입금지 조치를 2011년 철회했다. 칠면조 가공업체 등의 로비를 받은 미국 정부가 사모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반대할 수 있다며 압박하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미국이 전 세계에 비만을 퍼뜨리는 주범이라고 미국의 정치ㆍ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가 2013년 9ㆍ10월호에서 보도했다. 미국이 비만은 질병이라며 자국민들의 비만 근절에 열을 올리는 모습과 달리 다른 나라에는 당근과 채찍을 섞어가며 비만을 수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FP가 지목한 비만 수출의 핵심은 액상과당이다. 과일이나 식물에서 추출한 액체상태의 당인 액상과당은 1957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후 생산과정의 독성 때문에 쓰이지 못하다가 1971년 일본에서 새로운 추출법이 나오며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액상과당은 사탕수수나 사탕무로 만든 설탕보다 1.5배 이상 달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해 당시 과잉생산이던 미국산 옥수수에 새로운 소비해법을 제시하며 미국 경제에 활력소가 됐다. 미국 통계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액상과당 수출규모는 147만 톤으로, 1995년도 수출 보다 1,450% 늘었다.
코카콜라가 1980년 자사 모든 제품에 설탕 대신 액상과당을 사용해 큰 폭의 매출신장을 이루자, 펩시 등 거의 모든 식음료 제조사들이 뒤따랐다. 액상과당은 현재 한국을 비롯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탄산음료는 물론 과일주스, 과자류, 잼 등 대부분의 가공식품에 사용되고 있다. FP는 "액상과당은 식욕억제 호르몬인 렙틴의 분비를 방해해 과식을 유발하고, 술과 담배처럼 중독성이 있어 설탕보다 해롭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액상과당의 유해성이 불거지는 가운데 액상과당을 처음 상용화한 미국의 국민 1인당 연간 액상과당 소비량은 1999년 22.6㎏에서 2008년 18.8㎏으로 감소했다. 국민 1인당 연간 액상과당 소비량이 2002년 8.7㎏에서 2008년 9.7㎏으로 증가한 한국 등 세계 상당수 국가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FP는 "미국은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직접 비만퇴치 운동에 나서고, 일부 주에서 탄산음료에 비만세를 물리는 등 액상과당 소비 근절에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그러나 사모아의 칠면조 꼬리 수입금지 철회와 같이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 국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삼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민의 건강보호와 자국의 자당(설탕 원재료)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산 액상과당으로 만든 탄산음료에 소비세 20%를 부과하는 정책을 시도했다. 그러나 카길 등 미국의 액상과당 생산업체 3곳은 2009년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통해 멕시코 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위반했다며 중재절차에 회부했다. 이들 업체는 결국 1억9,180만 달러(2,040억원) 배상 판정을 받아내 멕시코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했다.
FP는 "코카콜라와 펩시가 5,320억 달러(566조원) 규모의 전세계 탄산음료 시장에서 약 40%를 점유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미 자국 내 산업의 한 축인 정크푸드 산업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직접 탄산음료에 비만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멕시코의 계획이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국회에 비만세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액상과당 등의 첨가물이 들어가 열량만 높고 영양은 적은 식품의 가격을 올려 소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는 물가인상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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