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죠. 더 큰 꿈을 향해 가고 싶습니다."
지난 5월말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계에 깜짝 뉴스가 전해졌다. 선덕고 2학년에 재학중인 이총현(17)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열린 러시아 아이스하키리그(Kontinental Hockey LeagueㆍKHL)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 팀 블라디보스톡 아드미랄의 지명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KHL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리그로 국내 아이스하키 선수가 해외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총현은 큰 무대의 관심을 받았다는 설레임을 뒤로 하고 묵묵히 빙판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내년 2월 러시아 현지로 건너가 훈련하는 것을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18세 이하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소집돼 훈련하고 있는 이총현을 18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깜짝 지명 받은 이총현 "왜 저를 뽑았을까요?"
이총현은 지난 5월말 블라디보스톡의 지명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농담인 줄 알았다. 그는 "운동을 마치고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배가 '너 KHL 지명 받았다는데 진짜냐'고 물었을 때 멍한 느낌이었다"고 돌아봤다. 너무 흥분돼서 "말도 안돼"라고 소리 쳤을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사실 이총현은 지난 7월 비자 등의 문제로 인해 KHL 진출이 조금 미뤄졌다. 대표팀 일정이 끝나는 내달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현지로 건너가 구단 관계자를 만난다. 본격적으로는 내년 2월에 넘어가 훈련을 한 뒤 여름부터 꿈의 무대를 누빌 예정이다. 그는 "솔직히 아직도 왜 하필 나를 뽑았는지 놀랍다"며 "어떤 모습을 좋게 보았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부족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이총현은 사실 연습벌레다. 국내보다는 더 큰 물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 2011년 12월 광성중 3학년 때 홀로 핀란드 타파라로 아이스하키 유학을 떠났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말도 잘 안 통하고 힘든 시기였지만 아이스하키 강국에서 배운 경험들은 그를 더욱 강하게 했다. 지난 4월 폴란드 티히에서 열린 2013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주니어 세계선수권 디비전1 A그룹 대회에 출전해 5경기에서 1골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농구 스타에게 물려받은 DNA
이총현의 어머니는 1980년대 한국 여자농구의 간판 스타 최경희(48)씨다. 1984 LA올림픽 은메달,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 주역인 최경희씨는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슈터였다. 1984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 입단, 농구대잔치 통산 최다득점(3,939점), 최다 3점슛(5,033개) 등의 기록을 세우고 1993년 은퇴했다.
최경희씨의 3남 1녀 중 둘째인 이총현의 형제들은 모두 아이스하키를 하고 있다. 형 이총재(19ㆍ연세대)와 동생 이총민(14ㆍ경희중)도 현재 빙판을 누비고 있다. 최경희씨는 이날 "총현이의 경우 생각지도 못했던 KHL의 지명을 받아 굉장히 기쁘고 놀라웠다"면서 "덕분에 본인 스스로가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다. 정말 열심히 연습한다"고 설명했다.
이총현은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어머니의 뛰어난 운동 신경을 잘 물려 받은 것 같다"고 수줍게 말했다. 이어 "아버지께서는 운동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힘이 정말 탁월하시다"면서 "부모님의 좋은 유전자를 잘 타고 난 것 같다"고 밝혔다.
KHL의 지명을 받은 뒤 이총현의 기량은 일취월장했다. 올해 고교 2차 리그 팀의 전승 우승을 이끌었고 17골(2위) 13어시스트(9위), 30포인트(4위)를 기록했다. 182㎝의 뛰어난 신체조건에서 나오는 탁월한 실력을 앞세워 블라디보스톡 구단의 지명을 받은 것이 우연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KHL을 넘어 더 큰 꿈을 향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그는 어느덧 하키 스틱을 잡은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총현은 더 많은 팬들이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져 들기를 꿈꾸고 있다. "모든 구기 스포츠를 통틀어 공수 전환이 가장 빠르고 몸싸움이 화끈한 것이 아이스하키다. 숨돌릴 틈 없이 박진감이 넘친다"고 설명했다.
이제 막 큰 무대를 향하고 있는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단순히 KHL를 넘어 모든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꿈꾸는 NHL에 진출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내년에 KHL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서 반드시 NHL 무대에 서고 싶다. 그것도 NHL 드래프트 1순위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어 "꿈은 클수록 좋은 것이니까요. 앞으로 정말 죽도록 연습하면 언젠가 꼭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꿈은 꾸는 자의 몫이다. 성실함과 실력으로 똘똘 뭉친 이총현이 껍질을 깨고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할 날을 꿈꾸고 있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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