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국가들이 국제형사재판소(ICC) 집단 탈퇴를 고려하고 있다. 유독 아프리카 국가만을 겨누는 ICC의 태도를 더 이상 참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아프리카 54개국 협의체인 아프리카연합(AU)은 12일(현지시간)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과 윌리엄 루토 부통령의 ICC 재판 유보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이 ICC의 케냐 현직 대통령 기소를 계기로 본격적인 반기를 든 것이다. ICC는 케냐타 대통령과 루토 부통령이 케냐에서 2007년 말 대선 직후 1,000명이 숨지고 50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한 종족 간 폭력 사태를 부추긴 혐의가 있다며 기소했다. 지난달부터 루토 부통령의 재판이 열리고 있으며 케냐타 대통령 재판은 11월 열릴 예정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반인도범죄와 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ICC가 아프리카 관련 사건만 기소하는 사실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1998년 설치돼 올해로 15년 된 ICC가 그 동안 기소하거나 공식 조사한 대상은 총 32명. 이들 모두 아프리카 출신이며, 해당 사건들도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한 것에만 국한돼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미군의 학살 범죄는 거론조차 된 적 없다.
아프리카 사건들만 기소된 건 분쟁이 잦고 국내 사법제도가 부실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특수성 등에 따른 결과일 수 있겠지만, ICC의 태생적 한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결과란 의견도 있다. ICC의 설치 근거인 로마규약에 122개국이 비준한 상태지만 미국은 미군의 면책권을 주장하며 끝내 비준하지 않고 있다.
주요국들의 입김에 휘둘리는 ICC가 정작 국제사회의 민감한 사안에는 끼어들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자세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재판소가 개설된 이후 자행된 시리아, 스리랑카, 파키스탄, 이라크 등의 대량학살과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ICC는 눈을 감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간, 러시아는 시리아를, 중국은 북한 관련 범죄 기소를 막고 있다"고 전했다.
수단 남부 다르푸르 등지에서 아프리카계 주민들을 학살한 혐의로 2010년 ICC에 기소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출석 요구를 무시하면서 ICC의 기소 편향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AFP 통신은 11일 "AU는 케냐 대통령과 부통령 재판을 케냐법원에 넘길 것을 주장하고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A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의 ICC 집단탈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전했다. 122개 ICC 가입국 중 34개국을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ICC 회원국에서 집단 탈퇴할 경우 한국의 송상현 재판소장이 이끌고 있는 ICC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공 출신의 데스먼드 투투 주교와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최근 AU의 ICC 탈퇴 시도를 강력히 비판하며 압박하고 나서자 AU의 행보는 잠시 주춤한 상태다.
은코사자나 들라미니 주마 AU 집행위원장은 12일 AU 전체회의 연설에서 "AU가 로마협약의 틀 안에서 존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집단 탈퇴와 거리를 두는 발언을 했다.
아랍계 언론 알자지라는 향후 AU의 ICC 집단 탈퇴가 ICC의 개혁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알자지라는 "ICC가 존립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ICC가 지금과 같이 계속 절반의 기능만 수행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그 존립근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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