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동양레저 기업어음(CP) 2,000만원어치를 투자한 A씨는 지난달 30일 동양레저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뒤 금융감독원 불완전판매신고센터에 피해접수를 했다. 2주가 지나도록 A씨에게 돌아온 것은 문자 두 통이 전부였다.
답답해진 A씨는 CP를 판매한 직원의 음성파일을 우편으로 보내고 전화로 확인을 해봤지만 "자료 요청 중"이란 답변만 들어야 했다. A씨는 "담당자가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기 힘들면 개인적으로 소송을 하라고 하더라"며 "접수 받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동양 사태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금융당국의 무성의한 피해 구제 활동으로 인해 또 한번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조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조사 기간도 길어 투자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감원에 설치된 동양 불완전판매신고센터에 접수된 민원건수는 14일 기준 1만4,564건에 달한다. 반면 현재 변호사와 전문상담원 등 상담인력은 49명뿐이다. 1명이 300명의 피해사례를 조사하는 셈이다. 게다가 동양증권이 판매한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산 개인투자자가 4만9,561명임을 감안하면 1명당 1,000명이 넘는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변호사 출신의 한 상담원은 "한 사람당 최소 100건 이상을 맡고 있는데다 추가 접수 사례가 계속 늘고 있어 업무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라며 "불완전판매 입증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과거 사례 등을 볼 때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소요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금감원이 2일 상담인원을 31명에서 49명으로 늘렸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의 안일한 인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국회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작년 7월 금감원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동양 사태 관련 보고서 전체를 달라고 금융위에 요청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요약본 3장만 달랑 줬다.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금융당국이 피해사실을 밝히고 구제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동양 피해자들은 다음 주에 금융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 명의로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감원장을 형사 고발키로 했다. 동양그룹의 유동성 문제와 회사채ㆍCP 투자자들의 피해를 수년 전부터 예상하고도 적절한 관리 감독을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최근 금융위 고위 인사를 면담했는데 마치 남의 동네 얘기하듯 관심이 없었다"며 "소비자보호에 대한 금융당국의 근본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직무유기ㆍ직무태만으로 형사고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금감원이 분쟁조정을 넘어 피해자들의 법적인 해결을 도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피해구제 여부도 불투명한 분쟁조정만 할 게 아니라 승소 가능성이 높은 경우 개별 소송에 나설 수 있도록 불완전판매에 대한 조사 결과를 피해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걸 의원실 관계자는 "금감원이 최근 판매된 회사채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빨리 발표해 피해자들이 직접 형사고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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